눈은 버스가 훈련소에 도착할 무렵 폭설로 변해,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군악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니 팡파르를 시작으로 행진곡을 연주했다.
소령 계급장을 단 영관이 과장된 몸짓으로 여러분의 입소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인사말로 우리를 맞더니, 특전사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왕 때우고 갈 30개월을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 거듭나지 않겠냐는 호소와 함께 지원자의 특전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하였다. 박력 있고 세련된 약장수 같았다.
일곱 여덟 명이 그 자리에서 지원을 하였다.
(훗날 듣기로, 그 순간에 꼬여서 간 애들 제대할 때까지 고생 절라 했고 제대하는 날까지 후회했다더라.)
특전사 지원병 모집관이 돌아간 후
"이 새끼들 봐라. 눈동자 굴려가는 소리가 들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선임 조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폭력과 얼차려로 전체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훈련소의 6주간의 교육은 교육훈련 일정에 대한 설명이나 이해를 돕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인격을 파괴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짧은 시간에 민간인 티를 벗기고 획일화, 규격화시키기 위해선 폭력을 통한 억압과 공포심 유발이 효과적이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6주간의 훈련기간에서 처음 4주는 신병교육대에서 받고 나머지 2주는 포병부대로 보내어져서 위탁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신병교육대는 편제상 1개 대대였으나 부대 특성상 기간병의 수는 1개 중대 정도였다.
조교가 주축이고 기타 의무, 통신, 행정, 상황, 취사병 등으로 이루어졌다.
방위병과 현역병, 하사관후보생 교육이 파트별로 나눠져 있고 훈련병의 전체 규모는 600명 정도였다. 오전 6시에 깨워서 밤 10시에 재울 때까지 나름의 일정이 있지만 공포심 유발로 얼을 빼놓는 게 주요 일정이었다.
몇 명은 훈련에서 빼주는 대신에 사병식당에서 노역을 시켰다.
나는 4주 대부분을 노역으로 대신했지만 마지막 관문인 유격훈련은 예외가 없는 관계로 받아야 했다. 유격훈련이라지만 종일 얼차려로 체력을 고갈시키는 게 전부였다.
최루가스 흡입 체험 장은 창고처럼 밀폐된 열 평 남짓한 건물이었다.
스무 명을 단위로 밀어 넣은 후, CS캡슐을 불에 태워 발생하는 가스를 강제로 흡입하게 했다.
스무 명이 서로 허리를 잡게 하여 기차놀이를 시키며 '어머님 은혜'를 부르게 했다. 방독면을 쓴 조교 다섯 명이 단봉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부르게 했다.(산소 소모량을 늘여서 야무지게 마시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고 눈물이 흘러내린 자리는 따끔거렸으며, 가슴은 따갑고 정신조차 혼미했다. 고통이 심해지니 분노가 일었다.
참다못해 조교를 덮쳐서 쓰러뜨린 후 방독면을 벗기자, 다른 조교들이 내게 달려들어서 단봉으로 무차별 난타를 가했다.
다른 훈련병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난투극이 벌어졌고, 그 결과로 조교나 훈련병이나 모두 가스에 질식되었다.
밖으로 나와서는 꼴통으로 찍혀서 조교들에게 개 맞듯이 두드려 맞았다.
내가 맞고 있는 시간에 나머지는 그 덕에 쉬고 있었냐고? 천만에, 대가리 박고 있었다.
유격체험을 끝으로 사실상 기초군사 훈련은 끝이었다.
훈련병을 모아 놓고선 대위 계급장을 단 중대장이 연설을 하였다.
그동안 대단히 수고 많았고, 제군들을 혹독하게 다룬 것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강한 군인으로 키우기 위한 충심이었으니 이해를 하시고 오 분의 여유를 줄 테니 그동안 맺혔던 감정을 욕설로 풀어내라고 했다. 덧붙이길 어떤 욕이라도 상관없으니 자신을 포함한 조교들에게 하라고 했다.
중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약속이나 한 듯이 "없습니다!!" 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중대장이 흐뭇한 얼굴로 웃는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잽싸게 손을 들었다.
"훈련병 삼매, 욕 좀 해야겠습니다."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기탄없이 하란다. 더불어 조교들을 도열시키고 자신도 옆에 선 후 내 말을 경청하라고 했다.
"야이~ 호.로 개.십.새.끼들아, 이 씹.불할 놈들아!!
니네들이 유능한 조교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택도 없다. 내가 보기엔 걸뱅이 안주 같은 놈들이다. 걸뱅이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 걸뱅이와 미.친.년 사이의 교배종이닷!!
니놈들 하는 행사머리 보니 클 때 무지 맞고 큰 놈들 같다.
왜 맞고 컸는지 니들은 모지만, 니들 에미는 알 거다.
니놈들이 맞고 나면 아까징끼는 옆집 아저씨가 발라줏제? 그기 혈육의 정이란 걸 니들이 알기나 하냐?
어이 안 하사, 니놈은 닭벼슬보다 못한 완장으로 군림했지, 여기 148명 중에서 일대 일로 붙었을 때 니한테 질 놈이 어데 있노?
최 하사~!! 너야말로 군대 혜택으로 사람위에 군림해보는 놈 같다. 넌 제대해봐야 밑바닥이다. 우짜던지 말뚝 박아라. 내가 간절히 권한다.
이 하사……. 김 하사……. 시불락 시불락 …….
중대장 야이 개.새.끼야, 이 죤만아!!
보자보자하니 보.지를 쑥 내민다더니, 니놈이 여기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순간
니 계집은 다른 껀수로 희희낙락중인 걸 모르제?
내 보기에 니는 좇.질은 젬병이다. 꼴값한다고 좇.질도 부실한 놈이 누구한테 총질 가르친다꼬? 씨불락 씨불락……."
통상 유격체험이 끝나면 그동안 혹독하게 다룬 것에 대한 보상으로 교관과 조교에게 욕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면, 훈련병들은 천부당만부당이라며 거절하고 그 답례로 풀어주는 게 관례였다.
그날 나는 보장받은 오 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얼굴이 벌게진 중대장의 지시로 주둥이가 틀어막힌 채로 끌려나와서 두드려 맞았다.
동료들은 유격장서 막사까지 오리걸음으로 왔고 나는 기어서 오게 되었다.
퇴소식은 사단의 공식행사다. 사단장의 참관은 소속부대의 최상급자와 말단 사병이 최초로 대면하는 날이며 가족면회가 이루어지는 날이기도 했다.
사단 연병장에서 행사를 하는 것이 통상관례였으나 눈이 많이 쌓인 데다 추운 날이었으니 면회객 배려에서 실내체육관에서 퇴소 식을 하게 되었다.
단상엔 수뇌부들이 앉고 광장에서는 훈련병들이 도열하고, 이층 관람석엔 가족들의 자리가 마련되었다.
훈련소 입장에선 6주간의 훈련성과를 수뇌부와 부모들에게 가시적으로 보이는 날이기도 했다.
시범은 제식동작과 총검술, 태권도 품세와 적 벽돌 격파 시범 순으로 진행이 되었다. (가마에 굽기 전의 벽돌이라서 강도는 약했다.)
다른 시범은 훈련기간 내내 반복 연습을 했으나 벽돌 격파 시범은 예산부족으로 자세와 격파요령만 교육받았다. 격파에서 실패하면 유급되어 퇴소가 불가능하단다.
앞 기수에서 한 명이 주먹으로 격파를 실패하였으나 불굴의 깡다구를 발휘하여 이마로 기어코 깨고는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을 보고, 사단장이 감격을 하여 "이놈 즉시 포상휴가를 보내라" 는 사례가 있었다는 얘기에 다들 감격한 표정이었으나, 나는 속으로 ‘미친 놈’ 싶었다.
퇴소 식 마지막 행사로 벽돌을 격파하는 시간이 왔다.
귀에 딱지가 앉게 듣고 자세를 연습했던 격파요령을 떠올렸다.
"왼 무릎을 굽히고 오른다리를 뒤로 쭉 뻗고 허리를 세운 자세에서 시선은 벽돌을 향하고 머릿속엔 격파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기최면을 걸어서, 지휘자의 구령에 맞춰 모든 힘을 주먹에 모아서 내려쳐라"
하지만 나는 지휘자의 구령과 동시에 벌떡 일어나서 주먹 대신 오른발로 사정없이 벽돌을 밟아버렸다.
옆 동료의 벽돌은 두 동강이 난 반면에 내 벽돌은 가루가 나버렸다.
스무 명 정도는 일 차에서 실패하여 다시 내려치고, 그래도 실패한 이는 이마로 들이받느라 난리를 치고 있었지만 나는 당당하게 시침을 떼고 있었다.
훈련 동기들이 모두 경남 출신인 반면, 훈련소는 인천이었고 혹한인 관계로 면회객 비율은 훈련병의 절반 정도였다.
훈련소의 배려로 가족들이 면회를 오지 않은 훈련병은 면회를 온 가족에 끼워서 따뜻한 음식을 얻어먹게 하였다.
형들 군 생활 중에 면회를 간 적이 없는 엄마와 울산 형이 생각지도 않게 면회를 왔다.
면회소는 북새통을 이뤘다. 옆 동료가 면회 온 엄마를 앞에 두고 "추웅썽!! 이병 누구누구 어쩌고저쩌고……." 하니 그 어미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저 바보 같은 놈…….’
제 딴에는 씩씩하게 변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지 몰라도, 어미로선 평소 철없던 놈을 군에서 얼마나 다그쳤기에 6주 만에 이리 변하게 만들었나 싶었을 테고, 앞으로 남은 기간을 생각하며 가슴에 못 박히는 줄도 모르지 싶었다.
"삼매야,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놈이 그놈 같아서 우째 찾겠노 했는데, 모두 똑 바로 서있는 데 하나가 삐딱하게 서있는 폼이 영판 니 아버지 뒷모습이라서 그 놈만 집중해서 보니 니가 맞더라. 니 형한테 말하고 짜달시리 웃었다."
형이 옆에서 한 마디 덧붙인다.
"어떤 애들은 벽돌을 못 깨서 머리로 찧고 난리를 피워서 겨우 두 동강 내는데, 니는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리데? 학시리 내 동생답더라."
다른 가족들은 지지고 볶고, 떡도 해오고 통닭도 준비하고 한입 가득 넣어서 호흡곤란 증을 보이는데도 부모는 계속 밀어 넣고 있는데, 엄마는 빈손이다.
어찌된 영문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니 형이 이 추운 날 뭐 하러 천릿길을 가서 식은 음식을 먹일 거요? 외출 될 건데 밖에 나가서 따신 음식 먹이지 하기에 빈손으로 왔더니만, 면회만 가능하고 외출은 안 된다네…….”
엄마의 말을 받아서 형이 또 거든다.
“여기 매점은 바나나우유 뿐인네 차서 우야노?”
억수로 미안해하는 형을 위해서 한 마디 해줬다.
"몇 달 만에 만난 형이 반갑지 않고 지기 삐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걸로 봐선 군대가 문제 있는 동네임이 확실하네요."
내게 배당된 동료와 나는, 두 시간 정도의 면회 시간이 풍요속의 빈곤이었다.
우리가 먹은 것은 PX에서 파는 바나나우유와 다이제스티브라는 비스킷이 모두였다.
내게 주려고 준비한 돈과 음식을 사주려고 했던 예산을 내놓으라 해서 기어코 사양하는 동료와 반씩 나눴다.
면회가 끝나고 각각의 부대로 분산배치를 위하여 호명을 한다.
"삼매, 306포병대대"
"음마얏~ 모야모야 이게 뭐야? 내가 왜 포병으로?
달고 있는 좇만해도 천근인데,
소총도 무겁구만…….
대포가 다 뭐얌!!
죠또, 시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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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눈팅삼매님께서 2007년 8월 24일에 본인의 블로그에 발표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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