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 진학하던 80년 봄의 어느 날, 나는 학교에서 채송화 모종을 훔쳐 사각 도시락에 담아 집으로 가져왔다.
이 채송화는 여느 채송화와 달리 겹꽃이고 송이가 커서 아주 예쁘다는 학교 주사의 말을 듣자 엄마가 좋아하겠다 싶은 마음이, 모종을 훔치는데 대한 가책을 못 느끼게 했다.
이후로도 기생꽃,셀비어, 과꽃등 한해살이 식물에서부터 개나리, 장미, 무화과 등을 집으로 가져 왔다.
유월 하순 무렵엔 주사 아저씨와 친해져서, 입국용 국화를 꺾꽂이할 땐 품종 좋은 천원, 한소성 등을 얻기도 하였다.
재래종 맨드라미와 패랭이, 붓꽃, 과꽃, 색비름, 소국 정도이던 우리 집 화단이 나의 도벽과 더불어 화려하게 변하였고, 그만그만한 화단을 갖고 있던 이웃들로부터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시는 아버지의 딴 살림으로 인해 남편의 부재를 견디기 힘들었던지 엄마는 당신의 안으로만 파고들어 방에만 박혀있던 무렵이었다.
이런 나의 꽃 도둑질은 결과적으로 엄마를 방 밖으로 나오게 한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사람이든 동 식물이든 상대로 부터 사랑을 받아서 행복하기 보다는 관심과 애정을 쏟음으로서 오히려 행복해진다는 걸 엄마를 통해서 알게 된 것 같다.
꽃송이 하나가 눈깔사탕만큼이나 큰 채송화에게 쏟는 엄마의 애정은 각별했다.
밤에 피었다가 아침에 사그라지는 나팔꽃, 기생꽃과는 달리 아침 햇살에 피었다가 어둠에 오므라드는 채송화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편애에 가까웠다.
"삼매야 속이 상해 죽겠다. 해지려면 한참 남았는데 벌이 앉고 나면 그 좋던 꽃송이가 시들어 버린다."
낮 동안 내내 피어 있을 꽃송이가 벌이 날아들어 수분을 시켜버리면 이내 사그라진다며
엄마는 꽃 옆에서 여름 내내 벌을 쫒아 주곤 했다.
이듬해부터는 빨강 노랑 흰색 말고도 교잡이 되는 바람에 여러 가지 색의 채송화가 피어났다. 나는 화려한 꽃이 좋았지만, 엄마는 흰 꽃이 귀해진다며 멸종을 우려하여, 벌이 달려들기 전에 미술 붓으로 흰 꽃끼리 인공수정을 시키기도 하였다.
내가 꽃 모종을 가져온 게 계기가 되어 엄마는 내게 꽃 얘기를 자주 하시더니 언제부턴가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발갛게 피는 기생꽃을 보며 혼자말로
"저년 화냥기 봐라. 해가 떨어지니 또 벌겋게 치장을 하네……."
하시며 꽃을 상대로 혼자 궁시랑 거리는 단계로 발전했다.
군 생활 중에 희한하게도 다른 어떤 것에 우선해서 엄마가 보고 싶고 그리웠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그렇다고 했다. 휴가 나가면 엄마 옆에만 파묻혀 있어야지 하다가도 막상 휴가를 나오면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귀대하면 다시 엄마를 그리워하곤 했다.
입대 후 처음 맞이한 봄은 군 생활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던 내게 삭막하게만 느껴졌다.
그 무렵 엄마로 부터 "꽃씨재중" 이라고 적힌 편지를 받았다.
세 숟갈 정도의 씨앗이 들어 있어서 편지라기보다는 배가 볼록한 것이 초등학교 때 불우이웃 돕기용 쌀 봉투같았다.
"기생꽃과 셀비아, 맨드라미, 채송화 씨다.
다른 건 슬슬 흩어만 놔도 싹이 잘 날 건데 채송화가 걱정이다."
편지에는 이 얘기 말고는 엄마의 안부조차도 없었다.
편지를 보낸 게 아니라 전보를 보냈네 하며 웃어 버렸다.
감성은 풍부하되 표현은 무척이나 인색한 엄마를 잘 아는 나로선 웃음만 나왔다.
막사주변에 뿌려두었던 씨앗들이 채송화를 제외하고는 지천으로 피어서 그해 여름 이후로는 아주 보기가 좋았다.
이듬해는 그 씨앗들을 다시 확산 시켜서 내가 제대하던 해 칠월엔 부대 전체가 엄마의 환영으로 뒤덮였다.
제대 후 십 년 가까이 연하장을 주고받던 하사관으로 부터 수년 후에도 그 꽃들이
막사 주변에 지천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제대하면 그쪽으로는 오줌도 안 눈다는 병영을 나는 잊은 적이 없었다.
2004년 8월 23일
엄마를 묻어드리고 와서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엄마의 농과 경대, 서랍 등을 뒤져서 물품을 분류 하던 중에 배가 볼록한 편지 봉투가 나왔다. 열어 보니 채송화 씨앗이 들어있었다.
봉투색이 바랜 걸로 봐선 묵은 씨앗으로 추정되지만, 이십 년 넘게 엄마에 의해 이어진 명맥이란 생각에 그건 태워선 안 되겠다 싶어 따로 챙겼다.
그러나 그 자리 없던 형수가 태워버리는 바람에 지금까지 내게 원망을 듣는다.
화단 제일 남단 벼랑 쪽이 채송화가 머물던 자리다.
그 자리에 떨어졌을 씨앗이 자연 발아가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비닐을 덮어두었다.
겨울에 비닐을 덮는다 하여 싹이 날 리 만무하겠지만 채송화에 엄마의 모습을 담아 버린 내 마음은 그렇게라도 해두어야 위안이 될 것 같았다.
2005년 1월 1일
아버지와 나란히 누웠다.
아버지 머리맡은 엄마가 심었던 철쭉과 한해살이 화초들이 말라 있고 봉분 또한 마른 잔디에 덮여 안온한 느낌이었으나, 엄마 봉분은 황토 빛이 더 많이 보여서 안쓰럽다.
엄마를 묻던 날은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주변에 천막을 쳐두었지만 땅에서 물이 콸콸 솟아올랐다.
하관할 구덩이에는 이내 물이 차올라서, 최대한 빨리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는 하관과 동시에 흙을 덮어 버렸다. 그래서인지 엄마에게만 오면 늘 마음이 아프다.
누나들도 오면 눈물부터 한 바가지씩 쏟는다.
나는 엄마에게 살갑게 장난을 치던 개구진 아들인 동시에 엄마의 속엣말을 들어줄 때는 아버지의 존재를 대신하는 아들 이상의 아들이었다.
새해 첫 날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만 엄마 무덤을 둘러보았다.
바람도 불고 날도 춥고 엄마아게 달리 할 말도 없었다.
그렇다고 추위에 얼굴만 찡그리고 올 내가 아니었다.
"엄마~ 죳 됐다. 형수가 채송화 씨를 태워삤다. 태워서 줄 게 따로 있지…….
형수도 참 철이 없제? 채송화 나던 자리에 올 봄에 꼭 싹이 나라고 빌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이제?"
올 한식에 엄마 표석 세우는 날 채송화 모종도 옆에 심을 수 있게 되길 바라고 바란 뿐이다.
눈팅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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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2007/11/21 20:57삼매님 글은 문제가 많다니까요.. 사람을 지나치게 자극해...
2007/11/21 21:55채송화야, 네가 물을 아주 좋아한다고?
2007/11/22 00:53물을 많이 주면 자꾸자꾸 꽃송이가 커진다고?
그런데 나는 네가 좋아한다는 그 물을 하루에 한 번만 주기로 했단다.
네가 그 마음을 알려나 몰라.
너에게 하루 한번 물을 주는 것은 꼭 지키고 싶은데
내가 요즘 몸이 많이 불편해서 몇번씩은 줄 자신이 없네~
여러 번 물을 주고 벌을 쫓아 주다가도
어느 때는 아마도 며칠씩 물을 못줄 공산이 크거든.
물을 자주 먹는 것에 습관이 되었다가 물을 못 먹게 되었을 때
너의 갈증은 어떻게 될까? 너는 목마름에 지치고 지칠 것이 아니니?
그래서 나는 애초에 너에게 적당한 결핍에 길들여지게 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하루 한번뿐인 물로도 행복할 수 있는 너로 만들고 싶구나.
조금 덜 자라면 어떠리.
꽃송이가 조금 덜 크면 어떠리.
어쩌면 커야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난 너의 잎은 자유로울 것이고,
그래서 더 깊은 아픔다움을 발산해 낼지도 모르지.
채송화와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대가 채송화가 아니라
아주 아주 옛날에 내 어린 아들 삼매임을 깨닫는다.
그랬었다. 그 아이가 자랄 때
더 줄 수 있어도 나는 자제했다.
내가 삼매에게 집중적으로 익숙하게 한 것은 "결핍"이었다.
조금쯤 부족한 것, 그러나 그 것은 조금 불편할 뿐. 아주 귀한 것.
그 맛을 알기 원했다. 그렇게 자란 내 아이는 지금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 행복한 어른이 되어 있구나...
요건 그때 제가 쓴 댓글이었습니다~~ ㅠㅋ
2007/11/22 09:55봉분에 마른 잔디가 당신을 덮고 있어서 다행이네요.
2007/11/22 11:25당신이 안 계실 때 가끔씩 저승을 생각했어요.
그때는 저승은 아주 어둡고 축축할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승을 떠올릴 때면 비오는 날 광에 들어가면
훅하고 날아오던 젖은 흙의 냄새가 떠오르곤 했지요.
이젠 알겠어요.
이승의 몸을 가지고 저승을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저승에서 또한 이승을 재단하는 것도 금기를 깨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겠지요.
그러면서도 당신 육체가 마른 잔디에 포근히 싸여 있다는 사실은
안심이 되네요.
꽃을 키우면서 모진 사람은 꽃을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허물어지는 것은 허물어지게 두고
떠나는 바람은 떠나게 두고
시드는 것은 시들게 두고
그렇게 정을 거두고서야 꽃이 나이고 바람이 곧 나이고
내가 바람이 되는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것도 이젠 알아요.
정을 거두기 전에 바람이 되어서
당신이자 삼매인 내 아들에게 날아가서
한 번만 그의 뺨을 만져주고 오고 싶어요.
그 정이 남지 않도록 잽싸게 돌아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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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 때 그 댓글에 대해 삼매님이 남기신 댓글이었죠.
네..차마 제가 그것마져 퍼올 수는 없어서..
2007/11/22 11:28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