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중에 특히 애를 먹이는 손님을 상인들 용어로 '진상'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는 산 지 몇 달이 지난 물건을 들고와서 환불해달라고 목에 핏대 올리는 손님, 물건값 깎아달라고 하염없이 조르는 손님, 1시간도 넘게 수십 번 심부름을 시켜놓고 그냥 가는 손님 등이다.
그런데 같은 모양새를 보이는데도 '진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손님이 있다. 노부부가 함께 오는 손님이다. 물론 꼭 부부가 함께 오시지 않아도 할아버지, 할머니 손님에게는 공손함이 더해지기는 하지만, 마트의 특성 때문인지 노인 고객들은 홀로, 혹은 친구분들끼리 오시는 손님보다는 부부가 함께 오시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동네가 서울에서도 빈촌에 해당하다보니 여생을 변두리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보내는 노부부가 꽤 많고, 그렇다보니 매장을 찾는 노부부도 하루 한 두 부부는 꼭 있다.
<문화일보 김선규ⓒ>
위에서 말한 진상 손님들은 그 요구가 아무리 황당무계하다고 해도 수박 껍데기만 들고와서 환불을 요구하는, 그야 말로 극악무도한 경우만 아니라면 해도 마트의 정책상 대부분 수용된다. 단지 그래봐야 손해볼 게 없는 마트측과는 달리, 점주의 입장에서 어지간하면 우리 매장이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덜 친절하게 상대한다.
그러나 노부부는 다르다.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 분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저 흔쾌해진다.
우리 물건은 마트에서 파는 물건 치고는 꽤 비싼 물건인 셈이다. 그런 물건을 구입하는 노부부 중 재산을 넉넉하게 모아놓은 분들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진짜로 없는 돈 꺼내들고 큰 맘 먹고 사는 것이거나, 아들 딸이 건네준 피같은 용돈을 들고 매장을 찾는 분들이다.
그렇게 산 물건이 설사 제품상의 문제가 없더라도 뭔가 불편하거나 못마땅한 것이 느껴지면, 젊은 사람들이야 그냥 저냥 입고 신고 하다가 다른 거 사면 되지 하지만, 노인들은 그 불편함이 천 배, 만 배로 느껴진다.
더구나 연세드신 분들은 어쩔 수 없이 까탈스럽다. 그러다보니 살 때는 무척 예뻐보였는데 두어번 입다보니 칭찬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아랫 동네 김노인 입은 것보다 왠지 촌스러워 보인다 싶으면 당장 후회가 된다.
특히 자식이 주는 용돈으로 물건을 산 손님은, 단순히 필요한 것을 구입했다는 의미 이외에 자식의 효심이 형상화된 결과물이라는 의미가 더해지므로 소비의 결과는 더욱 신중해지고, 조금의 불편함도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그래서 기꺼이 바꿔드린다.
추석날 아들이 준 용돈으로 등산복을 사입으셨는데, 몇 달 지나 그 다음 설날에 집을 찾은 아들이 뭘 저런 걸 샀냐고 타박하는 통에 할 수 없이 바꿔야겠다고 하는 손님도 있다. 뭐 어쩌겠나. 마냥 즐겁다는 표정으로 바꿔드린다.
매장에 걸린 옷 수십 벌을 입었다 벗었다 하다가 그냥 가셔도 그냥 환하게 웃어드린다.
"잘 봤어~~. 다음에 딸래미 데리고 다시 올께"
"네, 그러세요~~"
"네, 그러세요~~"
이렇게 보내드리고 나면 두어 걸음 가시다가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와 내 귀를 잡아당긴다. 그러고는 굳이 안해도 되는 주석을 달아주신다.
"딸래미 데리고 온다는 얘기는... 딸래미보고 돈 내라 그런다는 얘기야, 하하하~~"
노부부 손님에게 유독 마음이 가는 것은 단지 그 분들의 형편이 어려울 것이라는 짐작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것을 무척 버거워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떤 면에서 '인간승리'를 쟁취한 분들이라는 느낌이라고 할까.
서로의 옷을 봐줄 때 젊은 부부는 주로 옷에 대해 얘기한다. 색깔이 어떻다, 디자인이 어떻다, 원단이 어떻다... 그러나 노부부는 그 옷을 입은 낭군님과 마나님에 대해 얘기한다. 또한 그 표현에 있어서 훨씬 적극적이다.
"이거 봐~~ 10년은 젊어보이는구만~~"
"다 늙은 영감이 젊어보여서 뭐해?"
"뭔 소리야? 좀 젊게 입고 다녀요. 맨날 시커머죽죽한 것만 입지 말고."
"흠... 그럴까?"
"다 늙은 영감이 젊어보여서 뭐해?"
"뭔 소리야? 좀 젊게 입고 다녀요. 맨날 시커머죽죽한 것만 입지 말고."
"흠... 그럴까?"
이런 대화를 나누는 노부부의 표정은 늘 서로를 바라보는 흐뭇함으로 가득하고, 젊은 사람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푸근함과 따뜻함, 세월의 두께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정겨움이 넘쳐난다.
전에 잔소리 많고 까탈스러운 남편을 비꼬아 "자상한 남편"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노부부의 경우도 당연히 그런 할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바람났어? 뭔 할망구가 그런 씨뻘건 걸 입고 그래?"
"아이구, 나도 좀 뻘건 거 입고 멋 좀 내봅시다."
"시끄러. 저거 입어. 같이 댕기면 내가 바람난 줄 알겠어."
"아이구, 나도 좀 뻘건 거 입고 멋 좀 내봅시다."
"시끄러. 저거 입어. 같이 댕기면 내가 바람난 줄 알겠어."
표면적으로만 보면 때로 까탈스럽다 못해 거의 폭력적일 때도 있다.
"아, 됐어요. 아무거나 신으면 되지 뭐하러 이렇게 비싼 걸 사."
"뭔 소리야!!! 의사가 좋은 신발 신으라잖어!!!"
"에구~~ 내가 산다면 얼마나 산다고 좋은 신발을 신어요~~"
"하루를 살든 이틀을 살든, 좀 편하게 댕겨야 할 거 아녀!!!"
"뭔 소리야!!! 의사가 좋은 신발 신으라잖어!!!"
"에구~~ 내가 산다면 얼마나 산다고 좋은 신발을 신어요~~"
"하루를 살든 이틀을 살든, 좀 편하게 댕겨야 할 거 아녀!!!"
마나님에게 윽박지르다 그 호통이 내게 넘어오기도 한다.
"이봐!! 이 사람이 얼마 전에 무릎 수술을 받았어.
그래서 좋은 신발을 신어야 되는데, 신어보고 또 다리 아프다 그러면 당신 고발할거야!!!"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기분이 나빠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넘치는 사랑의 다른 표현에 뭉클해질 뿐이다.
<문화일보 김선규ⓒ>
결혼했던 기간보다 혼자 지낸 기간이 훨씬 길어져있는 나로서는 알콩달콩 지내는 내 또래의 부부를 보면, 아주 좋게 표현해서 경이로운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노부부를 볼 때는 그 경이로움이 경탄으로 바뀐다.
그 오랜 세월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삶을 살게하는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가톨릭에서 수녀와 수사는 청빈서원(淸貧誓願)이 필요하지만, 신부에게는 그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수녀와 수사는 수도원에서 함께 생활하지만, 신부는 평생 혼자 살아가고 노후에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것을 거북해하는 까닭에 은퇴 후 그럭저럭 혼자서 살 수 있는 정도의 재산축적을 허용한다.
가톨릭 신부와는 거리가 멀지만, 나도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대략 그런 삶을 살게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나 매장을 찾는 노부부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 옛날 결혼을 앞두고 했던 고민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혼자서 외롭게 사는 게 힘들까, 누군가와 부대끼며 사는 게 힘들까? 질문을 바꿔서 혼자서 자유롭게 사는 게 좋을까, 누군가와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게 좋을까?
지금은 분명히 혼자서 외롭게 사는 게 전혀 힘들지 않지만, 나중에는 결국 누군가와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을 하게될 것 같다. 내가 매일 만나게 되는 노부부들처럼 그럴 수만 있다면.
코코ⓒ
-------------------------------------------
편집자주) 이 글은, 원저자의 동의하에, 별도로 편집,게재된 글입니다. 불법적인 펌글이나 스크랩이 절대 아님을 밝히는 바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코코ⓒ
-------------------------------------------
편집자주) 이 글은, 원저자의 동의하에, 별도로 편집,게재된 글입니다. 불법적인 펌글이나 스크랩이 절대 아님을 밝히는 바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한RSS를 이용해서 보다 편리하게 알밥로그를 구독하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저두 노인부부들을 볼 때 마다 그런 생각 하는데...
2007/11/28 21:50주차장에 차가 서고 운전석에서 80은 훨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비틀 거리면서 내려서 반대쪽 문으러 가서는... 문을 열어 주면... 작대기 짚은 할머니가 힘겹게 내리고... 할아버지의 부축을 받아서 두분이 비틀거리면서 음식점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
.
.
저 차랑 살짝 이라도 접촉사고 났다가는 과실치사 되겠다는... 생각을 하죠.
그건 노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라...
2007/11/28 21:52조심하는 마음이잖아효~
뭘 그렇게 따지삼. 까칠하게 시리...
2007/11/28 21:54아 참... 까 먹었었네.
찌질넷 접속을 원상복구 하라!!!
닭횽 게스트북에 글 쓰면 찌질넷에 옮겨 드릴께효~
2007/11/28 21:57실시간 댓글도 옮겨드립니당~
캬캬캬
닭횽 게스트북에 글 쓰면 찌질넷에 옮겨 드릴께효~
2007/11/28 21:57실시간 댓글도 옮겨드립니당~
캬캬캬
게스트 북에 쓰면 깽판이 안 되자나여.
2007/11/28 22:07-사실은 게스트 북 못 찾은 알바-
예상은 했기에...
2007/11/28 22:11맨 아래쪽에 보면 방명록이라고 있구만~
아하하하... 만인의 예상에 맞춰 주는 센스죠... 제가 찾으려고 마음만 굳게 먹었었다면 못 찾았겠습니까? (일단 우기자)
2007/11/28 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