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
화개장터는 예전부터 삼남지역 물산의 중심으로 이름난 장터였다. 하긴 그 일대에서 이름이 나지 않고서는 장이 설 수가 없고, 장이 서기 시작하면 자연히 이름은 나는 것이지만, 화개장터는 섬진강 주변에서 매우 중요한 시장의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다. 강을 끼고있어 물자의 유통이 용이하면서도 강폭이 그리 넓지않아 강건너 구례지역의 물산과 주민을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더욱 유명해진 것은 영호남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던 5공시절, 그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면서, 영호남 주민이 한데 어울려 장을 열고 장을 본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또한 화개장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화개 벛꽃길의 입구 노릇을 하고, 쌍계사를 비롯한 지리산 남부지역의 명승지를 영향권으로 하고 있는 까닭에 그 명성은 날로 더해갔다.
그래서 지금은 5일장이 아니고 언젠가부터 상설장이 돼있다. 그러나 지금은 본연의 유통 기능보다는 관광 기능이 상대적으로 강조되는 까닭에 여의 상설장과는 달리 언제 가더라도 며칠 걸러 장을 선 듯한 들뜬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화개장터가 일반시장 기능보다는 관광 기능이 좀더 강하다는 것은 팔고있는 물건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내다팔 수 있는 농산물이 주가 되는 것은 어느 시골장이나 마찬가지지만, 일반 시골장을 가면 의류, 집기 등 생활용품의 비중이 매우 높다. 특별히 관광지화되어 있지 않은 장을 가보면 옷장사들이 거의 절반이다.
그러나 화개장터는 다분히 관광에 중점을 둔 제품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악양에서부터 봐왔던 감이다. 나는 감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 이 글 쓰느라 감을 하도 많이 봤더니 돌탱횽에게 준 것 중에서 두어개는 좀 집어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생긴다.
호박이 꽤 무거운 모양이었다. 이 아주머니는 그 중 좀 작아보이는 것을 몇 번 들었다 놨다 했는데, 꽤 힘겨운 모습이었다.
장터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엿장수. 이 엿장수는 앰프소리만 시끄러웠지 하는 짓은 너무 점잖아서 매후 아쉬웠다.
그늘에 묶여있는 고양이를 희롱하며 즐거워하는 아주머니도 계시고.
가장 특이한 것은 대장간이었다. 장에서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대장간의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주 훌륭한 볼거리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 것이 실제로 이 물건에 탐을 내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무쇠로 만든 칼이 뭔가 좋은 것도 있는 것 같고, 칼이라고 해도 수십 가지 종류, 호미만 해도 굵은 호미 가는 호미, 긴 호미 짧은 호미 등 용도별로 다양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화개시장의 주종은 나물과 약초류였다. 다른 약초와 달리 겨우살이는 그물에 담아 위에다 달아놓고 있어야 하는지 가게 마다 주렁주렁 달고있었다.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고 가장 많은 흥정이 이루어지는 곳도 역시 약초와 나물 가게였다.
은어와 빙어 튀김. 앞에 있는 작은 것이 빙어고 뒷편에 있는 굵은 것이 은어다. 알바들끼리 모여서 만원어치를 사네, 이만원어치를 사네 하고 있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는데, 이것 저것 사진 찍느라고 뒤늦게 일행에 합류했더니 그 뒤로는 아무 소리가 없다. 설마 안 먹었겠지? 나만 빼놓고 다들 먹었을까?
코코ⓒ
-------------------------------------------
편집자주) 이 글은, 원저자의 동의하에, 별도로 편집,게재된 글입니다. 불법적인 펌글이나 스크랩이 절대 아님을 밝히는 바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한RSS를 이용해서 보다 편리하게 알밥로그를 구독하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호오... 아들내미 풋볼 쫑 파뤼에서 술 마시고 알딸딸 해져서 왔는데... 본문이 올랐군효. 잠자기 직전 일인시위 한번 더 하고 잡니다.
2007/12/02 11:55찌질넷을 정상화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