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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시절의 추억

사는이야기 2007/12/04 12:17 by 알밥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군대 얘기만 나오면 갑자기 수퍼 울트라 히어로에 베컴을 능가하는 축구선수에 장군의 아들에 뭐뭐뭐 다양한 모드로 변신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젊은 날에 긴 시간을 감옥같은 곳에서 갇혀 있다 보면, 사실 남는건 자괴감 말고는 없다. 특히나 정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난 다행하게도 군입대 이전에 현재의 마눌님을 만났고, 근무하던 부대내에서 편지 받은 통수의 기록을 갱신하고 나왔으니 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현역병들 최대의 사고 원인이 애인의 변심이라는 거 보면..

(이 대목에서 마눌님께 무릎꿇고 엎드려서 고맙다고 한번 하고 계속 쓰자. )

젊은 날에 겪어야 하는 상처 치고는 참으로 쓰린 기억들을 많이 남겨주는게 또 군대인것 같다.

행정병 특유의 야근에 시달리던 시절, 사실 군생활 내내 시달렸으니 특별한 시점은 아니다. 바로 밑에 쫄따구 하나가 상태가 이상해진 것을 발견했다. 멍하니 앉아서 하늘 한번 보고, 한숨 한번 쉬고, 만들어온 서류는 오타 투성이고 그나마 제시간안에 가져오지도 못하고..

심지어 저녁밥도 잘 못먹는거 아닌가..

이거이거 뭔가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되었구나 싶어서, 시간을 냈다.

행정병들 일생에 낙이 먹는거 밖에 없는데, 밥도 못 먹다니.. 이건 사회에서 부하직원이 삼일정도 무단결근한 것과 맞먹는 충격이다.

밀린 야근거리 싸들고 올라오면서, 미리 운전병 시켜 준비해둔 소주 댓병 하나를 같이 숨겨 왔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야근모드에 돌입하여 죽자사자 자판을 두들겨 댔더니 일도 좀 빨리 끝났다. 새벽 한시에..

쫄따구 야간 보초는 다른 부서 동기에게 부탁해서 바꿔놨고, 내 또한 두배로 해주기로 하고 다음날로 미뤘다.

커피포트에 라면 끓여서 (이거 또 안 먹어본 사람은 모른다. ) 소주하고 차려놓고 얘기해 보라고 마주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흔하디 흔한 일병 증후군이었다. 입대전에 사귀고, 이등병때까지만 해도 죽자사자 만나던 여자애가 연락도 없고, 전화해도 맨날 안들어왔다고 그러고.. 편지에 답장도 없단다.

이거 약도 없다. 아무 대책이 없다. 그냥 내보내주는 수밖에.. 휴가가서 미복귀할 넘이라면 붙잡아 놔봐야 탈영하기 마련이다. 해서, 과장되게 여자애 때문에 신세 망친넘들 얘기, 실연당해서 탈영했다가 붙잡혀서 남한산성가서 조뺑이 치고 있는 다른 부서 졸병 얘기, 이런 저런 얘기 늘어 놓으면서 술 멕이고 재웠다.

상고 나와서, 일찌감치 사무원으로 입사해서 직장생활하다고 온 넘이라, 일도 잘하고 싹싹한데, 결혼까지 약속하고 사귀던 여자애가 그 삼년도 안되는 시간을 못 기다리고 연락을 끊다니.. 그것도 입대한지 한해도 돌기 전에 말이다. 좀 심하지 않은가 하면서도, 사실 사람사이의 정이라는게 눈에 안보이면 순식간에 잊혀 지는법.. 아웃오브 사이트 아웃오브 마인드라는 촌빨 날리는 영어 속담이 군대시절 처럼 잘 맞아 들어가는 때도 없는 법 아닌가..

누구를 욕하겠는가, 젊은 날 생이별을 강요하는 이 사회를 욕하는 수 밖에..

완전 웬수가 돼버려서 말도 잘 안하는 처부 고참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정 얘길 했다. 그 자식 없는 동안 내가 그 자식 일 다 할 테니까, 쟤좀 내보내 주자고. 그랬더니 지 일까지 다 할거면 생각해 보겠단다. 역시 웬수답다. 혼자일만 가지고도 맨날 야근인데 삼인분 다 할려면 아얘 잠을 자지 말라는 소리 밖에 더 되는가..

별 수 없이 승락하고, 선임하사에게 부탁하니 바로 어디서 삼박사일짜리 특별 휴가증을 하나 끊어온다. 인사처 근무하는게 이럴때는 장땡이다. 근데 왜 난 내 법정 휴가도 못 찾아 먹고 제대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애 앉혀놓고, 선임하사가 또 일장 연설을 한다. 너 절대 나가서 하늘이 무너지는 꼴을 당해도 싸우지 말고 돌아와야 한다. 블라블라~

어차피 걔 귀에 들어갈 리가 하나도 없다는거 다 알면서 저런 얘기 뭐하러 하는가 모르겠다. 사실 선임하사 입장에서는 쟤 나갔다가 미복귀하면 참모에게 조낸 깨질거 각오하고 보내는거니 말릴 수도 없다. 그런거 보면 또 군바리들이 무지 순진하고 인간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결국 부랴부랴 옷도 제대로 못 챙겨입고 휴가를 떠난 그 넘은, 전화 한통화 없어서 사람들 속을 태우다가 복귀일자에 시간 맞춰서 웃으면서 복귀를 했다.

예상대로 여자애와는 관계를 정리했고, 포기하고 맘을 정리하고 왔다는 거다.

그게 그렇게 정리가 되나.. ㅎㅎㅎ

아니나 다를까, 위병소 애들 겁주고 몰래 들여온 싸구려 길벗올드 양주병을 하나 꺼내 보이면서 밤중에 시간을 내달라고 한다.

장교들 다 집에가고, 고참들 다 잠든 후에 새벽근무까지 마치고 둘이 또 뼤치카 앞에 마주 앉았다. 피엑스에서 사온 오징어포를 질겅 질껑 씹으면서 양주를 홀짝홀짝 거리면서, 자기 얘기를 늘어 놓던 그 녀석은 끝내 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먹이고 말았다.

그런 넘을 앞에 앉혀두고 바라본 새벽하늘은 참으로 맑고 고왔다.

지랄맞게도 반짝이는 강원도의 새벽하늘이란..




이 사진을 보는 바람에 떠오른 추억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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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닭배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 찌질넷에 배반 당한 제 심정과 똑같군효... 접속 조차 못하게 하단휘...

    2007/12/05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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