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내가 있는 삽화 (1)
그는 나의 친구입니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나의 남자 친구입니다.
환갑이 되던 해, 초등학교 모교의 백주년 기념식이 있던 날,
동기생만의 뒷풀이 모임 때, 내가 앉은 테이블의 맞은 편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나의 남자 친구입니다.
졸업한 지 47년이 지났으니,
같은 반을 했던 여자 친구도 알아 보지 못하여 서로 당황해 하는데.
하물며 남자 동창생이야 얼마나 낯설고 멋적었겠습니까?
그 어색한 분위기를 깬 사람이 그였습니다.
"아이구! 할망구들이네." "그래도 참 반갑다, 악수나 하자."
느닷없는 이 반말은 정말 파격이었고,
우리들을 순식간에 친숙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자기 소개들을 하였는데, 먼저 이름, 6학년 몇 반이었다는 것,
사는 곳 등을 말하였습니다
자식이 몇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고,
아직도 현역인 친구는 직장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때는 5월 4일. 식당의 큰 유리창으로는
정원의 흐드러진 봄꽃들이 불빛에 반사되어 더 찬란하였고,
무언지 모를 애상, 비감, 허무, 그러면서도 어떤 설렘 같은 것으로
주름진 얼굴들에 홍조가 필 때,
우리들은 더 이상 낯설지도, 환갑의 늙은이도 아닌,
열네 살의 소녀 소년이었습니다.
춥도 덥도 않은 상쾌한 밤바람! 옛날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지하철을 향해 가는데,
"타!!.집이 논현동이라며? 방향이 같애."
도무지 어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애녀석 말투로 그가 차를 세우며,
문을 열었습니다.
가까운 길을 놔두고 서울역을 거쳐, 남산길을 돌아,
이태원을 지나, 강남 방면의 친구들을 한 사람씩 내려 주고,
논현동 큰 길에서 내려 우리집 언덕길을 올라올 때,
내 가슴에, 유년이 강물이 되어 출렁이었습니다.
두 번째 모임에서 그는 회장이 되었고, 나는 총무가 되어,
이 모양새 요상스러운 동기회를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동창회가 결성된 그 주말에,
그가 둘째 며느리를 보는 혼례식이 있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인데, 그는 세 번 다 일체의 축하금을 받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우아한 우리들은 그럴 수 없지" 하면서
우리 여학생들은 백화점을 누비며 깔깔 웃어대며
선물을 고르러 다녔습니다.
친구들의 가슴에도 유년이 꽃으로 피어, 향기를 뿜어냈습니다.
반나절 고르고 고른 것이 부부 찻잔! 화가의 안목이 집어낸 것이라,
우아하고 그윽한 빛을 발했습니다.
식장엔 접수처가 없다니, 천상 내가 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일터는 우리집의 길 건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분홍빛 웨딩 카드에 또박또박 글을 썼습니다.
시인은 눈 내리는 소리를, 멀리서 여인이 비단옷 벗는
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비단옷 벗는 소리의 눈 내리는 아침이나,
시골 하늘로 도망간 서울의 별들이 고향 그리워 찾아온 밤에,
한 쌍의 아름다운 부부가 마주 앉아, 이 찻잔을 들고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언어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시부모님이 되시는 회장님 내외분도, 새 신랑 각시 못지 않는
원앙의 정을 누리시옵소서
여학생 일동.
얼마 안 되어, 전화의 송수화기에서 터질 듯한 웃음 소리가
벨 소리와 더불어 들려왔습니다.
"와!! 유선진, 내가 니 편지에 뿅 갔다는 거 아니냐?!
"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
"점심이라고? 내일 혼주가 될 사람이 무슨 점심?
얼른 퇴근해서 푹 쉬어. 그래야 이뻐지지.."
"뭐라구? 이뻐진다구? 날보고 이뻐지라구?? 핫핫핫"
이렇게 그와 나의 삽화는 그려져 갔습니다.
--
(어머님 수필)
로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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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저도 뿅갔습니다.
2007/12/05 20:33--------------------
시인은 눈 내리는 소리를, 멀리서 여인이 비단옷 벗는
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비단옷 벗는 소리의 눈 내리는 아침이나,
시골 하늘로 도망간 서울의 별들이 고향 그리워 찾아온 밤에,
한 쌍의 아름다운 부부가 마주 앉아, 이 찻잔을 들고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언어를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나두 뽕 갔는뎅... 근데... 꼭 비단옷이 아니어도... 걍 옷 벗는 소리면... 흐흐흐...
2007/12/05 20:43일헌... 키보드에 침이... 찌질넷도 접속 안되는데... 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