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내가 있는 삽화 (3)
그와 내가 그리는 삽화의 바탕은 유년입니다.
인생을 육십부터라고 하고, 회갑은 십이 간지가 다시 시작되니,
한 살이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노경의 입문이지요.
일말의 서글픔을 느끼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마음이 착잡해졌었습니다.
이렇게 회갑이라는 나이가 물살을 일으키고 있는 착잡해진 마음에
유년의 물결이 덮쳐 왔으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성의 투합을 한 것입니다.
그와 내가 그리는 삽화에서 그가 잡은 붓은 연민이고,
나는 경탄이라는 물감을 풀었습니다.
계단도 내려오지 못하고 절절매고 있는 어릴 적 친구!
그의 연민의 시작이 그것이었다면.
그렇게 부실한 눈을 가족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두 번째 연민이 되었습니다.
"식구들은 잘 몰라, 가정생활에는 내가 전혀 불편을 안 주거든.."
사실 나의 약시는 내게 불편한 일일뿐,
남편과 아이들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눈 앞에 가깝게만 놓으면, 나는 무엇이든지 잘 보았으니까요.
노안이 시작된 남편이, 돋보기 없이도 작은 글씨를 잘 보는 게
"와, 당신, 눈 좋으네."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밖에 같이 나와서는 알 거 아냐?" "그 때도 잘 몰라."
우리는 동부인을 별로 하지 않는 부부이고,
동반의 외출 때라도 나는 내색없이 해결해 나갔기 때문이죠.
"정말 이해할 수 없네."
그는 남 유달리 자상한 성격이고,
또 매사를 부부 위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 나의 가정생활을
혼자 확대 해석하고,
친정 오래비 같은 측은 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연민을 그려 갔습니다.
그의 일터는 논현동 사거리에 있습니다.
우리집에서 걸어서 5분의 거리이지요.
47년 만에 처음 만나 동창회를 시작하려면,
더구나 남녀 혼성 동창회라면, 창설(?)임원들은
의논할 일이 많게 되지요.
가까운 거리에 있는 회장과 총무는 그런 면에서 안성맞춤의
인선이었습니다.
그의 사무실 지하에 찻집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나에게 우표 500장을 주었습니다.
첫 유인물이 나간 며칠 후의 일이었습니다.
"편지를 받고 너무 좋아 하더라.
금년에 이 우표 다 써야 돼, 명령이야."
그래서 편지가 되면 나는 그 원문을 들고 찻집으로 갔고,
그는 "좋군." 하며 사인을 했습니다.
이 찻집에서 나는 그를 하나하나 알아갔습니다.
9남매의 셋째 아들이라는 것, 어머니를 17살에 잃었다는 것,
2남 1녀를 두었다는 것. 아내가 구슬처럼 영롱하다는 것,
자기 건물은 서초동에 둘, 강남에 하나 있는데 여기에 나와 있는 건,
이곳 주인이 여든 살이 넘은 분이라,
이 큰 빌딩을 운영하지 못해 자기가 대신 해 주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이런 것들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놀라고 감동하며, 감탄의 물감을 풀어
삽화를 그리게 된 것은 그의 삶의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눌변입니다. 어휘가 간단하고,
어법은 서두와 말미가 생략된 중간 말뿐입니다.
나는 눈을 버려가며 책을 읽은 사람이고, 명색이 글 쓰는 사람이라,
그가 던지는 한 단어에서 그가 말하려는 내용을 압니다.
"어떻게 알아 차렸지?! " 그는 사뭇 신기해 하곤 하였지요.
그가 대화 도중에 단편적으로 언급한 이야기를 정리하며
나는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형 집에서 자기 집으로 모셔와,
돌아가실 때까지 15년 동안,
아들로서 그가 보인 일들은 효가 실종된 이 시대의 귀감입니다.
우선 현관으로 들어오면,
아버지가 계신 곳을 통과해야만 되는 곳에, 아버지 방을 정했다고
합니다. 텔레비전은 아버지 방에다만 놓고,
보고 싶은 사람은 아버지 방으로 오지 않을 수 없게
하였고, 둥근 큰 교자상을 아버지 방 가운데 두고,
식당을 겸하게 하였다네요. 아버지 방은
배설물의 냄새가 코를 쥐게 했었는데 말이지요.
그는 엄격한 가장이었고, 투덜대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면역이 되더라고 그는 웃었습니다.
"내 아내의 수고를 나는 평생 갚아나갈 거야."
그는 진심으로 아내에게 감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효자인 그에게서보다
나는 남편인 그에게서 더 감동을 받습니다.
잠을 자다 깨어 보니,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더군.
좀전에 아내가 새벽 미사에 갔을 때는 눈이
안 왔는데, 차고에 가 보니 아내의 차가 없었어.
성당으로 갔지. 아내의 차가 있더군, 나는
트렁크에서 체인을 꺼내 감아 놓고, 말 없이 다시 돌아와서 잤지.
나는 결혼하고 생긴 돈은 모두 아내 것이라고 생각 해.
나는 한 푼이 생겨도 두 푼이 생겨도
아내 이름으로 저축을 했어.
아내가 참아 주었으니까 가정이 있는 거야. 누구네 집이든...
내가 그리는 삽화의 물감은 그래서 감동의 주홍색입니다.
나는 그가 친정 동생처럼 대견해지고,
어찌 그리도 신통방통하냐고 칭찬해 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번번이 그의 얼굴에 어두운 빛이 지나갔습니다.
"아니야, 열심히는 살았지만,
열심히 사느라고 가장 중요한 것을 잃었단다.
니가 그까짓 소설책을
보느라고 중요한 눈을 잃었듯이 말야.
나는 니가 눈이 나쁜 것이 그래서 가슴이 아파."
그날도 찻집에서 동창회 모임을 의논하고 난 뒤였습니다.
"시간 있으면 같이 가 줄래" "어딜...?" "묻지 말고..."
그가 방향을 잡은 곳은 잠실 쪽이었습니다.
차는 중앙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가슴이 나빠... 너도 그랬지? 안경도 안 된다네~수술도 안 된다네~. 내가 그래."
그가 진찰실로 들어간 복도에 앉아, 나는 메모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바보, 심장병이라니!!? 수술도 할 수 없다니, 멍텅구리!!
아까 내 발이 그렇게 비틑거렸던 것은
병원의 대리석 바닥이 미끄러워서가 아니었단다. 친구야, 친구야!!
진찰실 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뒤에서
의사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속히 정밀 검사를 받아 보시도록...심장병 치료보다 그게 급해요."
아아! 나는 보고 말았습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그의 운전하는 옆모습을 보았을 때,
석양에 반사 되던 이슬 한 방울을...
그가 나를 연민하는 연민 이상의 연민이,
내 가슴을 적시며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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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수필)
로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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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 글은 패쓰 합니다.
2007/12/06 20:21패스 하려면 패스한다는 말도 하지 말으셔야죠~~
2007/12/06 20:35글을 지우려고 해도... 댓글이 달려서 불가능 하군효... 이게 다 찌질넷을 빨리 이전하지 않는 광리자 탓이다...
2007/12/06 2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