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내가 있는 삽화 (完)
젊은 시절, 내 속은 하나의 활화산이었습니다.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불꽃들이 뿜어낼 곳을 찾아
용틀임을 했지만, "어미"라는 지표가 너무 단단하여,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마침내 시나브로 꺼져갔습니다.
그러나 불이 꺼져버린 자리는 커다란 분화구가 되어.
큰 동굴을 이루었고. 무시로 그 동굴에 삭풍이 불어,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껴야 했습니다.
나는 옷을 껴입는 대신, 옷을 벗어 바람을 몸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그것은 밖에서 불어오는 외풍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속바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갖다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 가슴 속의 빈 동굴!
당신은 그 공허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어느 날은 타는 갈증으로 허덕이게 하며,
어느 날은 비애의 늪 속으로 빠뜨려 혼절케 하고,
어느 날은 절망으로 울부짖게 하며,
또 지쳐 지쳐 삶의 의지를 소진 시키는 동굴,
나는 이 어두운 동굴에서 울부짖으며, 혼절하며.
허덕이며. 소진 되어 가던 어느 순간
하나의 불빛이 진작에 그 곳에 켜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절망의 끝에서야 보이는 그 불빛을...
그 이후 동굴은 나의 평화요,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나는 내가 경험한 이 슬픔과 환희를 그
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었습니다. 절망하는 자만이 볼 수 있는 빛,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의 끝에서 반드시 보이는 그 불빛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데도 그는 아내의 신앙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나는 마치 환갑이 넘어 만나게 될 남자 친구에게
이 "불빛"을 전해 주기 위해 그 많은 갈등을 치른 사람처럼,
간절하고 간절하게 죽음을 넘어서 있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가 이것을 믿고 확신하게 될 때,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것이 새롭게 되고,
새로운 육신이 된다고 설득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혈관에 쌓인 기름을 녹여내는 수천 도의 내 우정이었습니다.
"고맙다. 알았어, 알았대두.."
그가 정밀 검사를 받은 두 번째 질환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처음 심장병을 알았을 때같이 힘들지가 않구나.
무슨 병이 진행되든 그 보다 먼저
심장이 먼저 그것을 막아줄 테니까.
심장이 먼저 멈춰, 나를 고통에서도 추함에서도
막아줄 테니까.
다른 병을 알고 나니까 오히려 너무 편안하다.
그는 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전보다 더
활기차고 굳굳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눈에도
그의 손 떨림은 확연하게 더해 갔습니다.
나는 백과 사전을 펴 보았습니다. 이런 설명이 써 있었습니다
손, 발, 목, 입술이 떨린다. 눈이 깜빡이지 않는다.
얼굴의 표정이 없어진다.
일체의 동작이 불가능해진다.
가면을 쓴 것같이 된다. 예후가 좋지 않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오오 하나님! 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그와 나의 임기는 금년으로 끝이 납니다.
우리는 모교의 결식 아동을 위한 금일봉을 들고 학교에 갔습니다.
그 동안 학교는 신축되어 현대식 건물이 되어 있었고.
어린 눈에 현기증이 날만큼 넓어 보였던
운동장은 커진 건물로 개인 주택의 앞마당만 하였습니다.
그와 나는 벤취에 가서 앉았습니다.
운동장으로 여자아이 하나가 나옵니다. 안경을 썼습니다.
그가 별안간 소리를 쳤습니다.
"와! 저기 유선진이 나온다"
그의 느닷없는 이 외침에,
아득한 세월 뒷편에 있던 옛날이 운동장 위로 올라왔습니다.
올라와서 안경 쓴 계집애 뒤에 섭니다.
뒤에 서서 계집애를 밀고 갑니다. 한참을 밀고 가는 길에 조그만
아이는 간 곳이 없고, 초로의 노인 하나가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의 연속! 소멸하는 것은 하나하나 개인의 것일 뿐
장구한 흐름에서는 그냥 큰 물줄기로의 합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평안"이 내 안에서 흘렀습니다.
설령 그가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그 물줄기로 먼저 들어 간다 해도,
우리도 또한 바로 합류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교장실로 향해 가면서 그가 내 손을 잡았습니다.
나는 이제 눈이 밝아 그가 잡아주지 않아도 잘 걸을 수 있지만.
그가 이끄는 대로 가만히 손을 잡히며 따라갔습니다.
가면서 속으로 물었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물어 겠다고 생각한 말입니다.
"친구야! 그 동안 우리 둘이 그린 삽화 말야. 그 것이 무엇일까?"
그에게선 아무 말이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사랑이었을까?"
한참 만에 교장실 문 앞에서야 그의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니..."
"아니라고...?"
"응, 아니지.. 사랑이라는 말로는... 너무 부족하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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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내가 있는 삽화 (에필로그)
"그와 내가 있는 삽화" 5편을 끝내고,
나는 그가 기다리고 있는 찻집으로 갔습니다.
보라빛 갓 밑에서 할로겐은 그의 얼굴을 창백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별 것을 다 쓰고 있더구나."
"잘못 쓴 것이라도 있었어?"
"그런데 내가 모르는 내 마음을 어떻게 그리 잘 아누?"
"눈이 안 보여서 마음으로만 보았으니까.
마음으로 보면 마음이 보이니까."
"마음으로 볼 때는 마음에 눈물이 흐른다고 했지?,
그래서 니 혈관은 깨끗하고,
평생을 울지 않은 내 혈관은 씻겨 나가지 못해,
탁한가 보다"
찻잔을 들어 올리는 그의 손이 정신 없이 떨렸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내가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그랬어.
산다는 것은 "죽음"을 분만하기까지의 회임 기간이라고..."
"죽음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산다는 말이 되겠구나!
근사한 말이다."
"근사한 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태교를 잘 해야 되는 거야."
"태교를 잘 하는지는 모르지만, 남보다 내가 잘 하는 것이 있네,
남보다 짧은 회임 기간에 죽음을 출산하니까 말야.
그 대신 팔삭 동이를 낳겠지?."
두 사람의 찻잔은 한 모금도 줄지 않고 식어갔습니다.
"고맙다."
"나도 고마워."
늦가을 같기도 하고, 초겨울 같기도 한 황량한 날씨,
포도 위에 뒹굴던 낙엽 하나가 바람에 날려갔습니다.
2001년 11월 ..
(어머님 수필)
로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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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 글에는 일인시위를 안 하고 그냥 패쓰 하겠습니다.
2007/12/07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