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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찌질넷이 참 좋다.(언젠가 나는 이 찌질넷이 참 싫다, 라고 쓸 날도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좋아졌다. 처음에는 무척 망설였다. '눈팅'이란 거 하면서, 내 인생에서 구경만 하는 시간이
이렇게 일상적으로 익숙할 줄 몰랐을 정도로 좋고 그러면서 서성거렸다. 어른이 되지 못한 어린애라고
지금까지 살면서 들은 얘기에서 정리되는 딱 한 문장이었지만, 사실 그것도 생각해 보면 20대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헤겔식의극단적 대립항 속에 살고 있는 스스로의 나약함이었다. 언제든지 그렇게 답답하고 무덤 같은 하수구 속을 첨벙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렇지 않아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 찌질넷을 알게 되었다. 애초 씨니스트 흉아의 도발성 멘트에 반응하다가 그 이후 물뚝 흉의 그 정당한 의견에 '다구리' 놓는 것을 보면서 인터넷적 문투에 익숙하지 않은 입장에서 당혹스러웠고 뭔가 할 일을 제대로 찾지 못 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았다.
"너, 바보냐?"
그게 2007년 가을부터 내 화두였다. 말을 잃은 구관조 같았다.
사실 내 인생의 10년은 지워진 세월로 비교적 측면에서 규정할 수 있다. 다 버리고, 자포자기하면서, 뭐 그렇게
일분 일초 시계침의 흐름에 막연히 조응하는 시간. 피해는 엄청났다. 머릿속은 깡통이 되었고, 눈팅의 시간 속에서 가슴에서 스물거리는 꿈틀을 느꼈어도 막상 현실화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진실로 '공포', 그렇다 그 공포가 나를 지배했다, 이 찌질넷에 용기내어서 가입하기 전까지.
오늘 친구랑 술을 마시며, 그 녀석에게 한 마디로 정의했다.
"나는 찌질넷의 글을 보면서 정밀함을 다시 배우고 있고, 주관이 확고한 이들의 치열함을 다시 익히고 있어."
아직도 나는 '까칠함'에 대해서 모른다. 댓글 쓸 때마다 상념은 지독하다. 이 글이 혹시라도 뭔가 오해를,
내 무식함을, 의도와 다른 전달을, 그런 쓰잘 데 없는 생각 때문에 머릿통이 터질 지경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글만 쓰는 것은 조폭들도 하지 않는 짓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짓을 버젓이 하고 있'었'다.
- 뽕을 넣은 디자인의 옷은 이미 90년대 이후 굿 바이였다.
진중권이 말했더라.
힘을 뺀 글, 인터넷 시대에 어울리는 문체, 그런 것들도 참으로 나를 괴롭히는 '괴물'이다. 둘리가 한강에 나타나는 경우랑 전혀 다르다.
글이 어긋나 버렸다. 사실 이 글은 찌질넷에 대한 감사의 편지이다. 나란 놈이 요즘 조금 메트로놈 정도까지 스스로를 조율할 정도로 오게 된 것이 이 사이트였음을 고백하는 글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대단히 부족한 인간이다. 가입도 어렵게 결정했듯이, 아버지 병문안으로 6형제 중 막내인 내가 '그냥' 대구로 내려 왔을 때도 '도끼단' 같은 강철은 이미 나에게 어디에도 없었듯이, 그 이전 어느 시기부터 개인적 삶에 대한 소중함은 잃어 버렸다. 그 어울리지 않는 연관성의 불확실함이 대단히 밀접한 확실성으로 올 수 있음이 이 '우연적' 삶임을 다시 깨달았다. 너무 소중하다.
나를 깨우쳐 준다, 이 곳은. 잠들어 있고 스스로 피폐함의 동굴로 도피했던 나를 깨우쳐 주고 있다.
참 좋다. 여러가지 감정이 내면에 충돌되지만, 그래도 이곳에 와서 깨우침이 다른 어떤 망설임과 두려움을 다 극복해 준다.
흔한 용어지만, 그 언제나 불멸의 용어인 '정체성' 회복 공간이 요즘의 나에겐 이 '찌질넷'이다. 처절한 배움의 공간이다, 나에게는.
다시 '고마워'라고 인사한다, 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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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컴한길,숲속비가내릴지라도,우산이없더라도,씩씩하게걸어가자. 빛살이들어오는틈새를보았지않은가 마야세@찌질넷 옮긴이의 뱀발 : 찌질넷은 요기를 누지르면 가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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