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프레임이 뭐고, 우리 사회에는 어떤 프레임이 있는가에 대해서 얘길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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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프레임이라는 것이, 이제 우리 이 프레임을 버리고 저 프레임으로 갈아치우자~ 라고 백날 외쳐봐야 되는게 아니라는 데에 있는 겁니다.
논리적 설명으로 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는 겁니다. 첫번 글에서 언급했던 레이코프는 그 모든 것을 단 한문장으로 축약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코끼리는 미국 공화당의 상징동물이며, 공화당이 심어 놓은 프레임을 상징하는 명칭입니다. 그 공화당이 심어 놓은 프레임을 없애기 위한, 아니 한 사람의 머리속에 박혀 있는 프레임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다만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고, 기존의 프레임이 선택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새로운 프레임이 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경우에 주된 프레임으로 가동하게 만들려면 역설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프레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레임이라는 것의 본질적인 특성이 하나 있는데 이게 무척 중요한 겁니다.
어떤 사실로도, 어떠한 훌륭한 반론으로도, 무지무지 정확하고 현실적인 근거를 들이대고 하는 논증으로도 그 프레임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인지부조화와도 맥이 통하는 현상인데, 눈앞에 어떤 현실이 벌어질 경우에 그 현실이 자신이 기존에 판단의 근거로 삼던 프레임과 모순을 일으키면, 프레임을 버리는게 아니라 그 현실을 가볍게 거부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즉, 개발경제 프레임에 맞춰서 이명박을 지지했고 이명박이 그런 식으로 국가 경제를 이끌어 나가니까 환호를 해 왔으며 당연히 나라살림이 좋아져야 하는데, 5년후에 우리나라 경제가 위험해지고 사람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지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한마디로 나라 살림 쪽박차게 생긴 지경에 빠진다 하더라도 개발경제 프레임을 포기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역으로 소위 진보랍시고 설치는 좌빨들이 방해공작을 벌이는 바람에 이렇게 망친거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뭐 그 때 가서도 노무현이 워낙에 경제를 망쳐놔서 5년으로는 복구가 어려운 거다, 지금 잠깐 어렵겠지만 박근혜 혹은 정몽준이 5년만 더 하면 좋아질 것이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뇌속에 한번 자리잡은 프레임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성정치인 전모씨 같은 사람이 티비 토론에 나와서 하는 얘기를 듣고 어안이 벙벙해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도대체가 앞뒤도 안 맞고 사회에 대해서 조금만 아는 사람이 들어도 순전히 어거지에 상대방 말꼬리만 붙잡고 늘어지는 그런 주장을 하는 여성 정치인이 뜻밖에 지지하는 사람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녀는 사람들이 가진 프레임에 맞추어서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상호 모순을 일으키는 주장을 함에도 불구하고 프레임에 비추어 그럴싸 한 소리라고 판단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지게 되는 겁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국가 방향을 반대하는 괘씸한 놈들에게 말이 되건 안되건 한마디씩 질러 주는게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런 프레임을 바꾸는데 있어서 반론은 절대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이명박이 추구하는 각종 정책들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반론을 하고, 논리적으로 허점을 지적하고 하는 방법으로는 절대 그 무수한 정책들의 바닥에 깔려있는 프레임이 강화되어 가는 과정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명박은 대운하를 얘기하면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실상 대운하 얘기를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대운하로 상징되는 개발경제 프레임을 자극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대운하를 만들겠다, 하지만 그거 못 만들어도 상관없다, 적어도 대운하 규모의 거대 토목공사를 시작하고 국가 예산을 들이부어 전 국민이 미친듯이 일하던 유신 시절 분위기를 또 만들고 싶은 것이다, 당신들도 바라는게 이런거 아니었는가, 봐라, 무슨 일만 하려면 딴지만 거는 저 좌빨들이 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당신들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런 분위기 아닌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던 개발경제 프레임이 또 가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옳건 그르건 상관 없이 말입니다.
물론 실무 정책적으로 의회내부에서, 또는 시민사회단체차원에서 운하 개발 사업에 비판을 하고 반대운동을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대운하라는 일종의 현실적 아젠다에 사로잡혀 모든 진보세력들이 그 대운하 반대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다수의 유권자들이 가지고 있는 개발경제 프레임을 더욱 강화시켜줄 뿐이라는 암울한 결론이 나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상황에 맞게 고쳐 보자면 대운하는 생각하지 마~ 가 되겠습니다.
레이코프는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사용하는 세금구제(Tax relief)라는 용어가 가진 함축적인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선이고, 그 사람들의 돈을 빼앗아 가는 세금은 나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금으로 고통받는 착한사람들(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착하죠)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해 주려고 노력한다, 라는 겁니다.
이런 세금구제같은 용어를 듣는 일반 유권자들의 머리속에는 자동으로 프레임이 작동되면서 세금구제는 좋은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뭔가 악한 사람들이며 그들은 현란한 말솜씨로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세금구제라는 용어 대신에 세금폭탄이라는 용어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동산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불로소득을 얻은 사람들 대상으로 종부세를 부과해서 세수도 늘리고 부동산 가격상승도 억제하려는 참여정부의 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해서 세금폭탄이라고 명명을 해버렸던 것이죠.
이 세금정책이라는 것이 사실상 전 국민중에서는 아주 극소수만이 부담하게 되어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금폭탄" 용어 하나에 온 국민이 세금의 공포에 벌벌 떨게 되는 것입니다. 평생가봐야 종부세 한번 낼 자격도 안되는 사람들까지도 말입니다.
거기다 대고 이 세금폭탄은 세금폭탄이 아니고 어쩌구 저쩌구 장황하게 설명해 봐야 이미 세금폭탄이라는 용어가 더 널리 퍼지도록 도와주는 결과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의 프레임만 더 강해지는 거죠.
이게 핵심입니다.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잡은 프레임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프레임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젠다를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어진 아젠다를 놓고 갑론을박 하는 것 자체가 그 프레임을 강화시킨 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일관된 구조의 프레임을 설계하고 그 프레임을 잘 표현하고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상징과 은유가 듬뿍 담긴 아젠다를 제시해야 합니다.
지금 블로그스피어에서는 날이면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이명박 정권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좀더 멋지게 비아냥을 할까, 어떻게 하면 좀더 멋지게 반론을 해 볼까 하는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행동, 그런 글쓰기들은 결국 이명박 정권의 정책을 홍보해 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진보세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민노당도 그렇고 진보신당도 그렇고 이번 대선에서 이번 총선에서 어떤 얘기를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기억나는 것은 모두가 다 이명박에 대한 반대뿐이었습니다. 모두가 합심해서 이명박을 도운 셈이죠.
실질적인 정책에 대한 반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진보적이고 이 사회가 좀더 사람이 살기 좋은 공동체가 되길 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새로운 미래에 대한 구상을 시작하고 그 미래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간단하고 명확한 상징과 은유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상대가 제시한 정책들에 대해서 반대만 한다고 진보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코끼리들은 다 잊어 버리고, 우리만의 얘기, 우리가 꿈꾸는 사회,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에 대한 얘기를 준비하고 시작할 때입니다.
그 얘기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때, 새로운 프레임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고, 그 얘기들이 실질적인 사고의 기반을 제공하기 시작할 때 그 프레임이 우선순위 높은 프레임으로 사람들의 머리속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구석으로 밀어내야 하는 프레임은 수십년간의 현실속에서 사람들이 뼈아프게 느껴온 생활속의 프레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밀어내기 위해서는 더 긴 시간의 고통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긴 프레임이 아무리 강고하더라도, 특정 임계점만 넘어간다면 새로운 프레임으로 급속히 대치되는 경우도 허다하게 존재합니다.
이제 각자가 하나씩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 때가 된 듯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사회, 제가 바라는 미래에 대한 간단한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가진 능력의 한계로 인해 그다지 멋진 것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작은 시작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죠.
물뚝심송@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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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을 하는 아해들이 할 일까지 해주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참으로 중요한 과제라는 데 동의합니다.
2008/04/17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