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친일인사 명단이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정리가 반민특위의 해산으로 무산된 이후 무려
6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이승만이 미군정의 지원아래 정권을 잡은 후 친일파를 중용하며 역사적 가치관이 전도됐습니다.
독립투사들의 후손은 여전히 곤궁한 삶을 천형처럼 감당하고 있습니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친일의 대가로 받은 재산을 대물림하며
여전히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1,2차 친일반민족 행위자 명단의 정리는 전도된 역사를 일부 바로잡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친일문제라면 개인적으로 각별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가장사로 인한 것입니다. 지방의 꼬장꼬장한 유학자셨던
외할아버지와 그 분의 데릴사위였던 아버지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꽤나 넉넉한 살림이었던 가세가 기울었던 것이
일제시대였습니다. 단발령도 거부하고,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던 외할아버지는 조금씩 재산을 빼앗겼고 거의 남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징용을 갔었다고 합니다. 직접 물어본 것은 아니고, 스스로도 부끄러웠던지 말씀을 해주시진 않았으니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형님이 46년생이고, 아버지가 45년에 귀국을 하셨다는 점에 미루어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귀국한
아버지는 아들이 없던 외할아버지의 데릴사위가 되셨습니다. 그러나 남은 재산도 없으니 아버지도 고생을 많이 하셨고, 온가족이
가난에 몸서리를 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우리집 가세가 기우는 동안 일제에 협력하여 재산을 불린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후손은 여전히 상대적으로 풍족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친일문제가 나오면 관심이 가는 이유입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명단을 정리한다고 당장 전도된 역사가 바로설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손들을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하지 않으면 영원히 전도된 역사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말 것입니다. 다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봉착하면 누가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우겠습니까? 적어도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정도의 교훈은 얻을 수 있어야 그것이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외세의 침탈을 받으면 외세에 빌붙어 치부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역사가 아닙니다. 차라리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친일의 역사를 상징적으로나마 정리하는 것은 지금도 너무 늦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위원회의 구성원을 상대로
이상한 발언을 했다는군요. 우리가 일본도 용서하는데 친일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공과를 함께 봐야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위원들이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이라며 정치적 색깔을 덧칠하기까지 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역사에 대하여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득한 절망이 느껴집니다.
이번 명단에 포함된 사람들은 이미 공이 널리 알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친일행적은 모두 감춰지고 오히려 공만 부각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그렇습니다. 그가 일본이 세운 괴뢰국 만주를 찬양하는 곡을 작곡하고 직접 지휘한
일은 그동안 감춰져 있었습니다. 조두남은 선구자를 작곡한 위대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일본군의 용맹과
선전을 기원하는 곡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무용가 최승희도 그동안 찬양을 과도하게 받아온 인사입니다. 수입중 상당액을 일본군의
무기자금으로 기부한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공만 널리 알려진 사람들의 치부가 일부 드러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공이 있다고 친일반민족 행위를 덮어야 공정한
것이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틀린 말입니다. 공은 이미 과도할 정도로 알려졌으니 과도 밝혀두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마치 공은
덮어버리고 과만 들추는 것처럼 발언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몰지각이라고 밖에 평가받기 어렵습니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이런
역사인식을 가져서야 나라가 어디로 갈지 걱정입니다. 공도 과도 모두 역사에 기록하는 작업이 지금 필요한 것입니다. 공으로 과를
덮는 것은 지난 60년동안 꾸준히 해온 일이며 옳지도 않습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정치적 파벌의 문제로 인식하는 것도 위험해 보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이 하는
작업은 모두 부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로지 그들의 친일행위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판단할 일입니다. 친일행위를 밝히는 작업도 허위사실에 기반하면 안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사실에 기반한 작업이라면 정파적
성격으로 폄훼해선 안되는 일입니다. 조선조에 임금조차 당대에는 사초를 함부러 보지 못했던 것을 상기해볼 일 입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의 명단 정리는 앞으로도 더욱 명확히 정리해야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가지도자의 역사에 대한 인식입니다. 공이 있는 자들은 과를 덮어야 한다는 듯 발언하는 대통령을 바라보며 마음이 답답할
뿐입니다. 오늘도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궁핍한 삶을 살아가며 선조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기득권을 누리며 살거나 뻔뻔하게 조상땅을 찾는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치하면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은
후손들의 원망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도된 역사는 반드시 선명한 정리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공과 과를 모두 기록해두는 작업은 기본중에 기본일 뿐입니다.
지금 그들을 처벌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적시하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대한 역사종리는 인류역사상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대통령이 이 일에 마치 불만이라도 있는 듯한 표현을 하는 것인 매우 적절치 못한 것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갑자기 우리사회의 주도권을 넘겨주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사실을 사실로
기록하자는 것입니다. 대통령도 그 일에 적극 힘을 실어주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다시는 전도된 역사관이 우리의 후손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일 것입니다.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입니다.
jkj비토세력@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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