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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쯤에서 쿠르드에 대해 좀 알아 봅시다.

 

쿠르드인은 전세계에서 국가가 없는 최대 민족이라고들 합니다. 옛날에는 중국의 서쪽 변방에서 살다가 칭기즈칸에게 쫒겨서 지금 살고 있는 중동에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터키의 남부에 약 2천만명, 터키의 남쪽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라크 북부지역(쿠르디스탄)에 약 500만명, 이란 동부지역에 또 약 400만명, 나머지 요르단, 시리아 등지에 수십만 정도씩 하여 대략 3천만명쯤이 쿠르드인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가장 큰 덕을 본 측이 이라크의 쿠르드입니다.

1991년인가 미국의 첫번째 이라크 침공시 (사막의 폭풍 작전) 터키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이 쿠르드 전사들에게 바그다드로 진격하기 위한 통로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쿠르드인들이 받아들인 이후부터 미국과 쿠르드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러나,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쿠르드인들의 숨통이 좀 트이자, 이젠 쿠르드의 두 정치집단이 서로 다투다 내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쿠르디스탄 지역에서도 북부의 에르빌주와 도훅주를 바탕으로 하는 쿠르드민주당 (KDP)과 슐레이매니아를 중심으로 한 쿠르드애국동맹(PUK)간의 10년 내전이 그것입니다. 아들 부시의 침공으로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양측은 이후 화합을 이루었고, KRG 정부 구성부터 철처하게 5:5의 배분비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후세인과 바트당은 이라크를 37년간 (38년간?) 통치했습니다. 후세인 시절에는 수십만명의 쿠르드인들이 대량학살 당했습니다. 이라크 북부에 살고 있던 쿠르드인 10명중 1명꼴로 학살당한 셈입니다. 동 기간에 쿠르드인들은 제대로 된 직장도 가질 수 없었고, 정부관료로 채용되지 못했고, 걸핏하면 감방으로 끌려갔으며 그 중 상당수가 재판절차도 제대로 밟지 못한 채 죽임을 당했습니다.

 

Dohuk 근교에 있는 감옥..후세인 시절에 늘 만원이었다고 함..지금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읍'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찍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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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에 현 바르자니 총리는 10대 후반의 나이에 이미 산 중에서 저항운동을 벌였다고 합니다.

바르자니 총리의 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독립투사였습니다. 모든 관공서는 물론, 기업들의 사무실이나 가정집에도 아버지 바르자니가 산 속에서 전통복장에 칼을 차고 서 있는 사진을 걸어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레스토랑에도 아버지 바르자니와 바르자니 총리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더군요. 아버지 바르자니는 모스크바에서 김일성과 동문수학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Hewa Group 회장 집무실에 걸린 아버지 바르자니의 모습 (잘 안보이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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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재임기간 중에서도 특히, 1988년 한 해 동안 후세인 정부에게 살해당한 사람은 이란 국경마을 할랍자 지역에서의 독가스 살포로 죽은 5,000여명을 포함해서 100,000명이 넘습니다. 후세인은 쿠르드인 뿐 아니라, 같은 아랍인이면서 종파가 다른 시아파 주민들도 살륙했습니다. 후세인의 사형이 쿠르드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에게 환영받는 이유입니다. 후세인 시절, 좀 역량이 있거나 돈이 있는 쿠르드인은 국경을 넘어 터키와 시리아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이젠 거꾸로 터키와 이란 등지에 있는 쿠르드인들이 쿠르디스탄으로 몰려 오고 있는 추세입니다.

 

어쨌든 후세인 정권이 사라지고 난 후, 수니파와 시아파의 틈새에서 쿠르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미국의 절대적인 보호와 지원에 힘입어 국회에서 쿠르드가 차지하는 비율이 50%를 넘어서고, 이라크 중앙정부의 각료도 절반 넘게 쿠르드계가 차지하고 있죠.

미국은 이라크에서 쿠르디스탄 자치정부를 최우선으로 발전시키려 하는 데다가, 현재 쿠르디스탄을 제외한 이라크 전 지역은 치안이 매우 불안합니다. 따라서, 현재 모든 전후 재건사업은 쿠르디스탄 자치지역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외국기업들도 쿠르디스탄에서 사업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몰려 들고 있죠.

지금이 바로 쿠르드에는 최고의 기회인 것 같습니다.

쿠르드인들의 성격은 평소 매우 친절하고 온순하다고 하는 데, 유사시에는 전사로 변신합니다. 그리고, 단결이 매우 잘되는 민족이라고들 합니다. 여전히 대가족제도를 유지하고 있고, 도시로 나간 아들들도 휴일이면 거의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쿠르디스탄 지도(Kurdistan Regional Government, KRG가 관할하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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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이라크의 쿠르드(쿠르디스탄)인들은 내심으로 당연히 독립국가의 건설을 원하고 있지만, 매우 자제하고 있는 중입니다. 복잡한 국제정세 때문에 완전 독립을 원한다는 말을 삼가고 있는 셈입니다. 쿠르드 독립에 가장 큰 반대세력은 물론 이라크 중앙정부지만 터키의 견제도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쿠르디스탄이 독립을 선포라도 한다면 그들과 한 핏줄이고 형제들이고 국경이 맞닿아있는 터키 거주 쿠르드인들이 가만 있겠느냐 이겁니다.

 

뉴스에 가끔 등장하는 PKK에 대해 간단하게 짚고 넘어 가겠습니다.

내가 만난 많이 배운 쿠르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PKK는 실체가 없다고 말하고 있더군요. PKK로 불리는 사람들은 과거 터키에서 합법적인 정당을 만들어 쿠르드인의 이익을 위해 활동했었던 대부분 대학생, 대학원생들이었습니다. 현재, 이라크북부, 즉 터키와 국경을 맞닿아 있는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에 약 3,000명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실제 터키에 대해 테러를 가할 수 있는 힘도 남아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 십 수년간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군요. 이들은 터키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쿠르디스탄 정부에 투항해도 환영받지 못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입니다. 그럼에도 터키가 자주 이라크 국경을 넘어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에 폭격을 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쿠르디스탄 자치정부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라크 내에서 쿠르디스탄의 독립을 경고하기 위한 것이죠. 두번째는 미국에 대한 엄포입니다. 미국이 쿠르드인들의 독립을 도와주지 말 것을 은근히 압박하는 셈입니다.

어쨌든 이라크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터키, 시리아, 이란 등 인근 국가들 모두 쿠르드의 독립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독립에 장애가 많은 것을 인식하고 있는 KRG가 택한 대안이 최대한 자치권을 얻는 것입니다. 최근 뉴스를 타고 있는 석유법도 KRG가 중앙정부의 석유법에 배치되는 자체법률로서 외국기업들에게 쿠르드 지역의 유전개발권을 허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중앙-지방정부간 티격태격하다가 조만간 타협할 것으로들 전망하더군요. 현재, 이라크 내에 가장 원유가 많이 매장된 지역이 키르쿠크(Kirkuk)입니다. 키르쿠크를 기름위에 떠 있는 도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체 추정매장량의 60%가 이 곳에 묻혀 있습니다.

원래 키르쿠크는 쿠르드인들이 살던 지역인데, 유전이 많은 중요한 지역이기에 후세인 시절에 이라크인 (아랍인)들을 많이 이주시켜서 아랍인의 비율이 40%까지 올랐다가 이제 KRG에서 쿠르드인 이주 정책을 실시하면서 현재는 쿠르드인 70%, 아랍인 30% 정도의 비율로 인구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키르쿠크를 누구의 관할 지역으로 하느냐 마느냐가 KRG와 중앙정부의 핵심 힘겨루기가 된 상황입니다. 결국에는 키르쿠크의 원유도 양자간에 사이좋게 나눠 가지게 될 것으로들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재 KRG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뜻이겠죠.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말(언어)입니다.

이 곳에서 물(WATER)~라고 읽습니다.

와라는 우리말로 와라(오너라)이고 보내라는 우리말로 역시 가라(저리 가라)입니다.

나이를 세는 두 살, 세 살도 모두 같은 발음입니다.

어린애의 나이를 물어보면, 들려오는 대답은 두살입니다.

 

문화도 비슷한 게 많은 데

이 곳의 시골에는 우리의 맷돌과 똑 같은 맷돌을 사용하고 오줌 싸개들이 쓰던 키도 똑 같이 사용합니다.

집에서는 아버지가 자리에 앉으면 아들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앉습니다. 어른 앞에서는 담배는 물론 술도 하지 않습니다. 가족이 모여 앉아 차이 (홍차더군요)를 마시고 나면 집안의 가장 나이 어린 남자(대개는 손자..대여섯살 정도)가 모두 정리해서 부엌으로 가져 나갑니다. 

또한, 형제간의 우애가 매우 깊은 게 공통점입니다. 가정에서의 교육이 매우 유교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는 점을 느꼈습니다.

 

바깥에서 몰래 우리를 훔쳐 보고 있는 여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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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형사취수입니다. 형이 죽으면 부인은 남편의 동생이나 형에게 시집을 갑니다. 실제,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초만시(City of Chomin, 이란국경에 가까운 작은 도시)의 시장으로부터 자신의 어머니 경우를 들었습니다. 남편이 일찍 죽은 후 아이들 3명을 데리고 남편의 동생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어린 아이들을 어머니가 직접 키울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결혼도 아직 부모가 어릴 때 정해 준 사람들과 하는 경우가 매우 많더군요.

특히, 사촌간에 결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Basil이라는 남자는 사촌과 결혼했다고 하더군요. Basil의 친동생인 Khalid 역시 Basil의 부인의 여동생과 결혼했습니다. , 형제가 사촌자매들과 결혼을 했고, 두 쌍의 부부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좀 헷갈립디다.

 

도훅주의 Aqra라는 곳의 가정집을 방문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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