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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전부터 계속 뭔가를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결국 제가 2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저 또한 20년전에 지금의 여러분들과 똑같이 무서웠다는 것 뿐입니다.

아마도 저보다 더 윗세대 역시 중요한 역사적 순간에 서서 느꼈던 기억을 물어 본다면, 무서웠다는 대답말고 할 게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1년전 어느날,  한밤중에 저는 친한 친구와 둘이서 어느 병원 복도에서 언제 쳐들어 올지 모르는 공권력에 대항해서 뭔가를 지키겠다고 보잘 것없는 주먹에 각목 한개씩을 들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 우리가 이러고 있는게 과연 옳은 일일까?

- 아니 옳고 그름 이전에 티끌만큼의 쓸모라도 있는 짓일까?

- 넌 무섭지 않니?

- 난 매번, 집회에 나갈 때마다, 거리로 나갈 때마다 무릎이 후들거릴 정도로 무서워, 그걸 숨기느라고 애를 먹곤 했어.

- 나도 그래. 그런데 왜 우린 여기에 있는 거지?

- 화가 나서 그런걸꺼야.

- 무엇에 대해서?

- 사람들이 나를 속이는 것에 대해서 화가나고, 그런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에 대해서 더 화가 나지.

- 화가 난다고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이 짓을 해?

- 안하고 있으면 더 무섭거든.

-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 모르지.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우리를 무서워 하는거 같어.

- 미안한거 아닐까?

- 미안하다고? 아닐꺼야. 그 사람들은 우리를 무서워해. 우리는 그들을 무서워하고.

- 좋아. 무섭다고 하자. 우리가 이렇게 무서운 걸 참고 뭔가를 했던걸 누군가는 기억해 줄까?

- 글쎄. 일단은 니가 알고 내가 아니까 두명은 기억하겠지.

- 모르겠다. 내가 아는건.. 무섭고, 졸리고, 배고프다는 거야.

- 술먹고 싶다.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아주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바로 우리는 무척이나 무서워서 겁에 질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무서움을 이길 정도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아주 강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그 시절을 그렇게 겪어 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아마도 제가 그 시절에 겪었던 똑같은 무서움과 똑같은 분노를 느끼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우습게도 20년 전에 제가 바라보던 지나가는 사람들과 똑같은 느낌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실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런 종류의 국가 권력은 촛불집회에 나가서 노래부르고 개인발언 한다고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촛불집회? 그런거 다 소용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촛불집회 백날 해봐야 들어먹질 않으니까 거리로 나아가서 가두시위를 해야 한다고요? 그런다고 꿈쩍 하겠습니까? 절대 안합니다. 공연히 여러분들만 다치고 잡혀가고 상채기가 크게 남게 됩니다. 저는 절대 여러분들이 다치고 잡혀가고 벌받고 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거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은 사람들이거든요.

오히려 저들은 여러분들이 모이는 것을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서 폄훼하고 불순하게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상태일 겁니다. 거기다가 기름을 부어주겠다고요? 안되는 거죠..

여러분들은 제가 살아온 그 때, 저희들이 맞서던 상대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대와 맞서고 있는 겁니다. 저희들이 맞서 싸우던 놈들은 제대로된 절차에 의해 선출된 민주적인 대통령이 아니었거든요. 폭력으로 정권을 훔쳐간 놈들이기에 수십만 수백만의 힘 앞에 굴복 할 수 밖에 없는, 힘의 무서움을 잘 아는 그런 도둑들이었는데 반해서, 지금은 아니거든요.

당당하게 국민들중 30%의 지지를 투표라는 절차를 통해 확인하고 그 자리에 올라간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쿠테타 도둑들과는 달리 말입니다. 아무리 국민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잘못된 투표를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그런 상대와 맞서고 있다는 점을 유념하셔야 되거든요. 정말로 힘들고, 암담하고, 답도 없고, 사방이 꽉 막힌 갈림길에 여러분들은 지금 서 계시는 겁니다.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거기다가, 난생 처음 해 보는 일을 하면서 언제 얼마나 얻어 맏게 될지, 혹시 잡혀가서 빨간줄 가는거나 아닐지, 여차 재수없어서 잘못 맞아 어디 하나 고장나게 될지, 온갖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득하실 겁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주장이 옳고 여러분들의 행동 방식이 옳은지 그거는 차치하고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당당히 얘기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용기는 무서움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서 크나큰 두려움을 밟고 넘어서는 것이라고 합니다.

용기를 가지고 행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절대 다치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서 절대 그들에게 꼬투리 잡힐 수도 있는 행동은 하지 마세요. 즐겁게 모여서 즐겁게 노래부르고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진심을 담아 촛불을 켜드시면 됩니다. 굳이 도로를 장악하고 시위할 이유는 별로 없거든요.

그게 아무 소용없어 보여도 가장 강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큰 여러분들의 함성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그 함성 말입니다.

뒷감당은 저를 포함한 못난 선배들이 맡아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래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도 자랑스러운 민주국가의 일원이 이미 되신 겁니다.





같은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동료로서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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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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