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또 이상한 발언을 했군요. 그동안 촛불문화제에 마뜩찮았던 심정은 알겠으나, 발언의 내용이
또 다시 국민을 모독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이대통령의 주장인즉 인터넷이 대의정치를 위협한다는군요. 과연 대의정치는 무엇이고
인터넷은 무슨 위협을 가한 것일까요? 혹시 인터넷과 친숙하지 못한 자신이 옳고 다수의 국민이 그르다는 오만은 아닐까요?
민주주의와 대의정치.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래는 모든 의사결정을 주권자가 합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원칙일 것입니다. 그러나 수백만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주권자가 모두 모여서 회의를 열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대의정치라는 도구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대의정치는 민주주의를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그 자체로 숭고한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직접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옳지만 물리적 한계로 불가능한 현실을 반영하여 고안된 장치가 바로 대의정치입니다. 따라서
대의정치는 민주주의 이념보다 결코 먼저 고려될 숭고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의정치 그 자체로 숭고해보일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들이 대의제에 의하여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권자가 선거가 끝났음에도 사사건건 자신들의 권력행사에 관여하고 간섭하며 감시하는 것은 불편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보다 때로는 대의정치를 더욱 강조하곤 합니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숭고한 가치입니다. 대의정치는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대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나서 대의정치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 이렇습니다. "주권자의 투표를 통하여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인이 주권자의 의사를 존중하고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정치의 과정이다." 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권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주권자의 이익을 침해하며, 위임받은 권력이 마구 사익을 추구해도 된다는 것이 대의정치가
아닙니다. 반드시 주권자의 뜻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행해야 합니다. 주권자의 의사에 심각하게
반하는 일을 저지르는 경우 국민저항권이 포괄적으로 인정되는 것이 민주주의에 부합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식.
이명박 대통령이 인터넷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대의정치를 위협한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대의정치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대통령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인터넷의 역기능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역기능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의정치를 위협한다는 인식은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대통령의 그러한 문제인식을 이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의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면 간단해 집니다. "대의정치란
주권자인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 권력을 위임하고, 위임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의하여 국사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미 권력을 위임한 주권자는 관여해선 안된다. 주권자는 다음 선거에서 안찍어줄 권리만 갖는다" 이런 방식의 대의정치에 대한
인식이라면 이대통령의 주장은 매우 적절한 것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 지지율 차이로 선출하였습니다.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싹쓸이를 허용하였습니다.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과반의석을 몰아주었을 뿐 아니라 한나라당 우호세력을 포함하면 2/3를 넘는 의석을
주었습니다. 그러니 위의 정의에 의하면 다음 선거나 최소한 보궐선거에서 투표하는 행위를 제외한 반대행위는 허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 조건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일어 납니다.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도 있습니다.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고, 몰입교육에 대한 비판도 거셉니다. 그 모든 것이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가 공유되고 확산되며
조직화됩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와서 촛불을 들고 정책적 결정을 막겠다고 나섭니다.
또 인터넷에서는 감정이 격앙된 글도 있고, 종종 사실을 좀 과장한 글도 보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이 이미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행사하는데 장애를 초래한 것으로 인식하였을 것입니다. 이대통령의 인식속에는 대의정치란 바로 위임받은 권력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인데 인터넷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터넷이 대의정치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르렀습니다.
인터넷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훌륭한 장치이다.
자 다시 처음에 정의한 본래의 대의정치로 돌아갑니다. 모두가 모여서 1/n의 목소리로 의사결정을 하고 실행할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 것은 완벽한 민주주의입니다. 또 직접 민주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의정치라는 수단을 도입하여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그 대의정치는 한계를 종종 노출하게 됩니다. 바로 이대통령식의 대의정치에 대한 인식은 대의정치의 한계점이자 큰
단점입니다. 분명 민주주의가 주권자의 뜻에 따라서 운영되는 것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위임해버린 주권자의 의사와는 전혀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의정치의 한계는 최소화하는 것이 당연히 옳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은 매우 훌륭한 역할을 담당할 수가 있습니다. 쌍방향으로 소통하고, 물리적 한계를 현저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위임받은 권력이 의사결정을 하거나 실행할 때 민의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매우 어려운 일이 많고 비용이 수반합니다.
그러한 것을 인터넷이 상당부분 해결해줄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주권자들과 직접소통까지 항상 가능합니다. 매우 훌륭한
문명의 이기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장치를 대통령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대의정치에 대한 잘못된 정의와 그 정의에 대한 삐툴어진 맹신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문명의 이기라도 그 것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한다면 순기능은 사라지고 역기능이 지배하게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의정치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곰곰히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주권자의 잘못은 없는가?
지금의 정치구도가 대통령이나 집권세력만의 잘못일까요?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의정치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몰표를 던진 주권자들의 잘못이 오히려 더 크게 보입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잘못을 따져 볼까요?
대의정치는 주권자가 투표로 권력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물론 훌륭한 철인이 하는 정치라면 아무렇게나 위임을 해도
무방합니다. 항상 주권자의 뜻을 살피고 존중하며 의사결정을 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투표를 하더라도 훌륭한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입니다. 얼마전 광우병 공포에 대하여 정권실세들이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어느
정권이 국민에게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수입해서 먹이겠느냐?' 바로 이 말입니다. 성서에는 '어느 아비가 자식에게 전갈을 먹으라고
주겠느냐?'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 편향을 드러낸 성서인용의 한 단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에게 해로운 것을 강요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주권자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우선 복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 당위성은
분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끝없이 사익을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 한계는 바로 국민저항권이 발동되어 쫓겨나지 않을
수준까지 입니다. 절대로 주권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존중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투표를 잘해야 합니다. 정말 그 인물과 그 세력의 과거를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과연 주권자의 이익에 복무할
가능성이 있는지, 도덕성은 어떤지를 보고 먼저 판단을 해야 합니다. 과거가 문제가 있다면 그들이 권력을 위임받았을 때 사익에
종사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습니다.
그리고 적절히 견제할 수 있도록 균형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청와대, 국회,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까지 모두를
몰아주어선 안되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그들이 주권자의 이익에 종사할 가능성은 낮아질 뿐입니다. 견제되지 않는 권력을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주권자가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한쪽으로 쏠린 권력의 집중구도 입니다.
또 진지하게 공약을 검토하고 옳은지 현실성이 높은지도 따져보아야 합니다. 그냥 묻지마 지지를 하고나서 뒤늦게 후회를
해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 투표를 잘못했다고 자책감이 들면 매일 촛불들고 나가서 피곤하게 막아서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것이 투표를 잘못한 대가입니다. 그렇게 막아서지 않으면 더욱 큰 해를 입게 됩니다.
물론 위임받은 권력으로 주권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일방통행한 정권의 잘못이 큽니다. 대의정치의 정의부터 엇나간 세력에게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잘못은 바로 주권자인 국민의 생각없는 묻지마 투표행위입니다. 진지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일입니다.
인터넷이 대의정치를 위협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며 만감이 교차합니다. 이미 투표로 권력을 맡겼으니 너희들은 입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들려서 더욱 투표를 잘못한 후회가 커집니다. 인터넷은 죄가 없습니다. 다만 대의정치의 본뜻을 왜곡하는
정치인들과 대의정치의 함정을 모르고 잘못 투표한 국민들의 죄가 커보입니다. 인터넷을 탓할 것은 없습니다.
비토세력@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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