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에드워드 매리엄에 의하면 국가권력을 유지하는 두가지 초석이 존재한다.
즉, 권력을 정당화, 합리화할 수 있고, 국민을 자발적으로 통합시킴으로써 지배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안정적 지배를 확립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란다"와 "크레덴다"이다.
* 미란다(miranda) : 피통치자의 정서에 호소하여 지배질서와 사회에 대한 귀속감, 일체감, 연대감을 만들어 내는 감성적 상징. 민족, 계급 등의 언어상징. 국기, 제복, 건축물 등의 물적 상징. 행진 등의 행동상징 등이 있다.
*크레덴다(credenda) : 권력의 존재를 피지배자에게 이성적으로 납득시키고 권력의 존속에 동의하게 함으로써 권력을 정당화· 합리화하는 것. 신에 의한 수권 등의 비합리적 교의. 국민적 합의나 이데올로기 같은 논리적인 것을 사용.
*크레덴다(credenda) : 권력의 존재를 피지배자에게 이성적으로 납득시키고 권력의 존속에 동의하게 함으로써 권력을 정당화· 합리화하는 것. 신에 의한 수권 등의 비합리적 교의. 국민적 합의나 이데올로기 같은 논리적인 것을 사용.
메리엄은 미란다와 크레덴다를 "권력의 초석"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실패하면 물리적 강제와 폭력에 의한 지배가 출현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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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권력의 생존비결 #1 - 시민사회.
국가는 그것이 보유한 권력의 속성 때문에 끊임없이 시민사회의 요구로 부터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국가권력에 대한 제한을 제도화한 것이 민주주의이다.
시민사회의 핵심을 이루는 시민성은 경제사회 영역의 개별적 이해관계와 모순을 정치적 수단으로 "해소"해 나가는 능력이다.
"해소"란 단어를 쓴 이유는, 결코 "해결이 아니라" 견딜만한 수준 정도로 완화해 나갈 뿐이라는 뜻에서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주의가 투쟁을 통해 일단 성립한 이후에 있다.
민주주의가 법의 형식을 통해 국가의 제도 중 한 요소로 자리잡은 이후, 시민사회는 국가의 일탈을 규제할 수 있게는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의 형식뿐 아니라 내용마저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는 시민사회를 법적 질서 내로 편입, 혹은 국가의 한 구성요소로서 제도화하고, 제도화된 시민사회를 매개로 하여 국가가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방지하고, 오히려 시민사회를 통해 사회를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메카니즘으로 시민사회는 국가의 한 규제된 요소로서 국가에 내재하면서, 사회경제적 모순을 부단히 완화해 나가는 작용을 하게되고, 그 결과는 국가권력의 합리화로 나타난다.
즉, 시민사회는 국민적 합의라는 "크레덴다"의 창출에 기여하면서 국가권력을 합리화해주는 수단이자 국가권력의 중요한 생존비결 중 하나가 된다.
2. 국가권력의 생존비결 #2 - 민족, 민족주의
자본주의국가는 세계자본주의 체제내에서 민족적 총자본가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경쟁을 필연적 속성으로 하고 있는 세계경제체제 속에서 각각의 국가는 외국자본과의 상호파괴적 경쟁에서 민족자본의 존재와 확장을 보장하는 민족적 총자본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민족 속에 정체성의 뿌리를 둔 국민국가적 시민들은 민족 간의 경쟁 속에서 타민족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민족자본의 요소화하여 행동하고 사고하게 된다.
그리하여 민족적 총자본가인 국가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고, 그 속에서 국가 내부적 사회경제적 모순은 은폐된다.
근대 국민국가의 성립과정에서 형성된 민족개념은 강력한 통합성으로 인해 국가권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만병통치의 "미란다"로서 작용한다.
문제는 한국인의 내면을 차지하는 민족개념의 절대적 비중에 있다.
어느 국가의 민족에 대한 절대성이 한국인만큼 강고할까?
손꾸락 아프니 각설하고, 한국인에게 민족이란 정체성 그 자체이다.
손꾸락 아프니 각설하고, 한국인에게 민족이란 정체성 그 자체이다.
한국에서 민족에 관련된 문제는 다른 모든 관심사를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조건 반사적 감성적 통합을 일으키는 역할(미란다)을 할 뿐만 아니라, 민족은 민족주의라는 논리체계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크레덴다)도 동시에 수행한다.
그리하여 적어도 한국에서는 민족이 "슈퍼 울트라 짱 미란다 & 크레덴다"로서 다른 모든 모순을 일거에 잠재우는 국가권력의 든든한 최후의 생존비결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3. 촛불과 독도.
민족이 우리를 불렀다.
누군가 "어이~ 학생"하고 부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듯이, 우리는 민족의 부름앞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그 부름에 대답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름이 하필이면 국가권력의 남용, 오용에 촛불을 밝히고 있던 "바로 그때"라는 것이며, 시민적 합의를 요구하던 "바로 그때"라는 것이다.
촛불이 한참일 때 혹시나 민족이 부를까봐 속으로 홀로 전전긍긍했었다.
민족은 "바로 그때"마다 우리를 불러세웠었기 때문이다.
민족은 "바로 그때"마다 우리를 불러세웠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두환이 전경을 통하여 "어이 ~ 학생"하고 불러세웠듯이, 민족은 "민족의 적" - 일본을 통하여 "어이~ 독도"하고 우리를 불러세웠다.
우리의 민족담론은 언제나 일본 민족주의를 대상으로 전개되었고, 서로가 상대를 배제하며 대적하면서도, 이면으로는 서로의 보수적 입지를 살찌우며, 외부배타적- 내부통합적 논리를 재무장해왔다.
즉,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는 상호 적대적 공범관계를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
MB정권이 고전하고 있는 사이 일본의 후쿠다도 만만치 않았는 모양이다.
후쿠다는 방정맞게 때를 맞춰 정권유지용으로 독도를 통해 민족에게 도움을 청했고, MB정권은
오비이락인지, 부창부수인지, 어부지리인지 알 수 없지만 필시 속으로는 민족의 고마움에 각골난망하고 있을 것이며, 나는 이렇게
자판삼매 중이다.
아무튼 민족은 바쁜 우리를 불러세웠고, 그 부름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든 아니든 민족이라는 슈퍼미란다 & 크레덴다는 작동을 개시했으며, 우리의 눈과 귀는 꼼짝없이 사로잡혔다.
북한총격 사건이 거의 동시에 터졌지만 경제적 유,불리라는 관점이 민족통일이라는 개념을
압도한지 오래라서, 정작 북한 총격문제는 민족이라는 미란다로서 작용하기 보다는, MB정권의 대북 강경드라이브의 계기로서, 혹은
이념공세의 빌미로서 역할을 하게 될 뿐이다.
하기야 원래부터 민족이란 미란다는 대외적대를 통한 내부통합용으로 쓰고 버릴 뿐, 같은 민족내부의 모순적 상황은 줏어온 자식 취급하곤 했다.
아무튼 이 정부는 크레덴다로서의 국민적 합의 요구는 이미 폭력적으로 거부하고, 일본의 독도 명기라는 사건을 계기로 전가의 보도 - 민족을 들고 나왔다.
그 효과는 현재 언론의 지면 할애 비율만 봐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촛불로 상징되는 국민적 합의라는 크레덴다는 민족이라는 슈퍼미란다 앞에서는 쪽도 못쓰고 있다.
촛불로 상징되는 국민적 합의라는 크레덴다는 민족이라는 슈퍼미란다 앞에서는 쪽도 못쓰고 있다.
그리하여 이 정권의 위기는 일단 고비를 넘기고 있으며, 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여러가지 그들만의 프로그램이 당분간은 그들의 의지대로 실행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맛있는 미란다도 웬만큼 마시고 나면 트림이 나온다는 것이고, 물처럼 자연스럽게 계속 들이키기엔 부담스럽다. 즉, 미란다도 한시적 효과를 가질 뿐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정권의 뿌리 자체가 친일반민족적 계보에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소고기 협상에서 보여준 매판적 행태를 보면 민족적 총자본가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되면 시민사회라는 호신용 크레덴다를 내팽개친 마당에 슈퍼미란다까지 상실하게될 것이고, 그 이후는 메리엄의 지적대로 물리적 강제와 폭력에 의한 지배가 출현하는 끔찍한 사태가 전개될 지도 모른다.
이미 시작된 역사의 퇴행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 처음엔 달콤하지만 뒷맛은 언제나 거북한 트림과 함께 텁텁한 갈증만을 일으키는 탄산음료를 저는 무쟈게 싫어라 한답니다. 더군다나 제조일자, 제조사, 유통기한도 불분명한 슈퍼미란다라니...뷁~ )
< 친절한 세줄요약>
1. 아무리 거시기한 권력이라도 다 살아남는 수가 있다.
2. 하필 으쌰으쌰하는 중에 대뜸 미란다를 멕인다.
3. 나는 슈퍼미란다가 싫어횻 ~!
궤네깃또@찌질넷
*편집자 주 : 짤방은 구글에서 슈퍼 미란다로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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