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들어왔더니 정연주 사태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간 것 같군요.
정연주가 KBS 사장으로 적합했느냐에 대한 원초적인 문제에서부터 사장으로서 잘했냐 못했냐, 공영방송의 공공성 정립을
위해 뭘 했냐 등등에 대해 주로 논의가 집중되었던 것 같은데, 이를 정파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무게중심이 좀 달라집니다.
정파의 특성에 따라 우선 언론의 기능과 위상이 달라집니다. 언론을 정보전달의 도구로 생각하고 조금 더 적극적인 입장을
가지더라도 대중에 대한 설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정파가 있는가 하면, 언론을 선전과 세뇌의 도구로 생각하는 정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후자는 극좌와 극우가 공유하는 입장입니다.
극좌와 극우의 입장에서 본다면 언론이란 오로지 자신들의 입장과 같은 소리만을 해야 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소리를 한다면 반동이거나 불순세력이 되는 것이지요.
아주 오래 전에 제가 언론통제에 관한 얘기를 하면서, 언론에 대해서 "권력에 의한 통제"가 아닌 "시민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어떤 알바께서는 권력에 의한 통제건 시민에 의한 통제건 좌우지간 통제는 나쁜 것이며, 언론에
대한 통제는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고 말씀하신 알바가 있습니다. 이것은 극자유주의적인 입장이라고 할까요?
KBS 역사에 서기원 사태라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KBS 사장을 임명하던 시절이었죠. 노태우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정부가 정부기관지였던 서울신문 사장 출신인 서기원씨를 KBS 사장으로 임명하자 이에 대한 극렬한 저항이
있었습니다. 이 사태 이후 사장 후보를 KBS측에서 추천하고 정부가 임명하는 제도가 정착됐습니다.
그러나 서기원 사태의 결과 중에 사장 선임에 대한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KBS 노조의 권력이 극적으로 강화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두 가지 특징적인 양상을 도출했습니다.
하나는 노조의 권한이 막강해져서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행사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박권상 사장 시절은 전임
노조위원장을 부사장으로 임명하고 경영 실권을 노조가 장악하기도 했습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지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좌파라면 이
때가 단연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보도, 제작, 편성 인력들이 자신들의 취재보도물, 영상제작물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인 관점으로 인해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는 위협이 완전하게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들이 생각하고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게
내버려두라"는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역시 완전히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연주는 서기원 사태를 통해 KBS가 쟁취해낸 이러한 유토피아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습니다.
반정연주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현 KBS노조는 그들의 기치를 휘두르는데 어떠한 방해나 탄압도 받지 않았습니다. 정연주
사퇴 이후 친이명박 이사회와 이명박에 의해 임명된 사장이 취임한 뒤에도 (KBS 내부의 어떤 계열이 지도부를 구성하더라도) 그
이전의 위상과 권한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위대하신 진보세력들께서 열심히 지원, 격려하면 잘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위축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지금의 사태는 KBS를
선전과 세뇌의 도구로 보고 "(이른바) 친노, 좌파의 도구"에서 "보수 우파의 수단"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세력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니까요.
KBS 구성원들이 언론자유라는 가치를 놓고 서기원 당시의 투쟁력을 다시 갖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자신들의
취재보도물, 영상제작물의 정치적 성향이 인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압력에 직면하게 되고, 그 앞에서 부단하게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상황이 도래한 것만으로도 멀리 볼 것 없이, 즉 "그들을 통한 국민들의 언론자유"까지 쳐다볼 것도 없이 우선 "그들만의 언론자유"조차도 심각하게 위축되는 것입니다.
저는 언론이 시민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부에 의한 KBS 사장 해임 기도에 극력 반대합니다. 이사회에
의한 인사추천제 역시 직접 임명하던 시절의 정치적 편향성을 해결하기 어렵다면 정연주를 일단 붙잡아놓고 그야 말로 "정치적
중립"을 담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후에 쫓아내도 쫓아내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여론 창출과 전파의 수단에 있어 극도의 열세를 보이고 있는 진보세력 역시 KBS 구성원들이 현재의 언론자유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그들이 얻게될 이익과 기회를 생각하면 이 상황에 오불관언해서는 안됩니다. 혹시 좌파적인 관점에서 언론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도 KBS가 극우파의 선전도구로 전락할 우려를 극명하게 내포하고 있는 이 사태에 반대해야 마땅합니다.
간장게장 알바께서는, 인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연주가 노무현이 임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2004년 이전에 KBS가
뭔 노빠짓을 그리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는 이유로, 또한 "노빠의 혐의가 있는" 언론노조가 지켜주고 있다는
이유로 "정연주야 짤리든 말든~~"하고 계시던데, 혹시 그것이 간장게장님이 지지하시는 어떤 세력의 입장을 단편적으로나마 유추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니들이 노냥 요 모양 요 꼴인 거야~~"
아니면 말구요.
코코@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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