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8/17 - [사는이야기] - (납량특집) 군대와 귀신이야기 - 1
2008/08/17 - [사는이야기] - (납량특집) 귀신과 군대 이야기 - 2
이어지는 3탄~
슬슬 귀신의 비중이 줄고 군대 얘기의 비중이 커지는 듯 합니다. ㅎㅎㅎ
사실 저는 입대할때 까지만 해도, 참 순진하고 여린 영혼의 소유자 였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런저런 고통스러운 젊은 날의 기억들을 묻어 버리려고 맘 먹고 일부러 보병을 지원했는데, 그런 나약하고 순진한 생각은 춘천 102 보충대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했죠.
급기야는 102보에서 최악으로 분류되는 양구 2사단에 배정을 받고, 군용 육공 트럭에서 내려서 소양강 선착장까지 더플백
입에 물고 오리걸음으로 내려가던 기억, 숨소리도 못내고 배 바닥에 대가리 처박고 군선 타고 가다가 문득 들려오는 "대가리를 들고
우측을 본다, 실시~" 하는 말에 따라 보니 눈앞에 보이는 대문짝 만한 38선 표지~~
이젠 진짜 죽었다 싶어서 잔뜩 쫄아 버리는 바람에, 신교대 입소(1탄에서 나왔던 그 신교대입니다. ㅎㅎ)후 특기병
분류하는데, 무조건 손들고 나서서 전 타자도 잘 치고 컴도 잘하고 프로그래밍도 잘하고 뭐든 잘합니다. 심지어 거짓말도
잘한다니까요~ 그러면서 어떻게든 보병을 면해보려고 나서게 된 겁니다.
결국 나와있던 사단 전산실장(그래봐야 대위 나부랭이)의 눈에 들어서 전산병으로 분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힘든 훈련병 생활도 음핫핫~ 난 사시사철 에어컨 나오는 전산실 근무다~~ 하면서 즐겁게 버티면서 마쳤는데, 훈련
끝나고 외박 나가서 가족들도 보고 지금 마눌님도 보고 들어왔더니, 새파란 전산실장은 어디가고, 늙수구레한 선임하사 같은 노인네가
짚차 끌고 와서 저를 태워 가는 거였습니다.
쫄아서 어디 가냐고 묻지도 못하고 와보니 사단 본부는 맞긴 한데 엉뚱한 사무실로 데려가더군요.
그래서 가게 된게 사단 인사처, G1 이었습니다.
고질적인 인력부족으로 시달리던 인사처에서는 연대나 대대급에서 행정병을 차출해서 비파, 비공식 파견병력으로 써 먹었었는데
갑작스러운 검열에 걸려서 비파들 다 내려보내고, 병사가 딱 셋, 그 중에서 하나는 보름후 전역예정자로 되어 있더군요.
결국 보통 열명남짓되는 병사들이 하던 업무를 저 포함 셋이서 해야 되는 상황이 와 버린거죠. 전역하는 사수(우습게도
경북대 물리과 출신이더군요.)는 저보고, 내 살다살다 꼬인 군번 많이 봤지만 너 처럼 꼬인 넘 첨 봤다~ 죽지말고 살아 나가라~
그러면서 제대를 해 버리더군요. ㅎㅎㅎ
거기다가 둘 있는 넘도 저보다 몇개월씩 고참들이니.. 전역때까지 저 넘들 밑에서 대장 노릇 한번 몬해보고 개고생 하겠다 싶었습니다.
거기다가 그 두넘도 아주 질이 나쁜 넘들인게, 한넘은 결국 전역후에 양구 꽃다방 마담 돈 뗘먹고, 양구 무슨 갈비집 돈 뗘먹고, 이거저거 합쳐서 몇백 정도 해 먹고 날라서 가게 주인들이 인사처로 찾아오게 만들었던 넘이고..
또 한넘은 어쩌다가 저런게 인사처로 왔는지 모를 정도로 무식해서 워드는 칠줄 몰라서 안치고, 챠트는 글씨체 나빠서 안 쓰고, 기안문은 맞춤법 몰라서 못 쓰는 그런 넘이었습니다.
진짜 암담하데요. 결국 새벽에 사무실 청소하는것부터 시작해서 인사처 모든 잡무에 안 끼는 데가 없게 되어 버렸는데..
제 보직이 원래는 인사처 장교계라고 장교 인사담당 계원인데, 인사처에는 장교계 말고도 안전계, 포상계, 등등 대여섯 가지의 계가 있습니다. 그 중에 일이 많기로는 장교계가 으뜸인데 그래도 장교계는 나름대로 짭짤해서 할만 합니다.
안전계는 평소 맨날 놀다가도 사고 터지면 몇주일씩 밤 새는게 보통인 직책이고, 그 밖에도 사단에서 벌이는 각종 행사
준비, 장교 하사관용 숙소관리, 훈련 나가면 병력관리, 군바리들 밥 멕이는거 머리수 세는 일(이거 진짜 골때리게 힘듭니다.
)그런게 다 인사처 일이 됩니다.
결국 저는 장교계원이면서 안전계일을 해야 되고, 기타 제반업무 시다바리를 다 해야 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거기다가
군바리 문화 특유의 최고효율을 가장한 치명적 비효율들이 산적한 그곳 업무에 초반 육개월은 거의 시체처럼 지내게 된 겁니다. 그
때 결정한 인생의 좌우명이 바로 "뭘 해도 잠못자면서 하는건 죽어도 안한다" 였습니다.
그 덕분에 사회 나와서도 밤샘을 밥먹듯이 하는 시스템 엔지니어가 되어 버렸으니 지질이도 재수없는 넘인거죠.
일주일내내 총 수면시간이 두시간을 못 넘기는게 다반사고, 사고라도 터지면 사무실에서 고참들이 타다주는 밥 먹어가며
보름씩 워커 한번 못 벗고 지내기가 일쑤였습니다. 그 때 무좀도 아니고 발에 악성 습진이 걸려서 제대 후에도 한 일이년
고생했었죠. 그냥 발이 다 썩었었다니까요. 양말이 안 벗겨져서 강제로 찢어서 벗었더니 살점이 묻어 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 업무 속에서도 재수없는 고참시키들의 갈굼은 계속 되었고, 각 부서 장교들(인사처 내에는 참모, 보좌관 말고도
인사장교, 안전장교가 기본으로 있고 그 밖에도 업무별 장교들 두어명, 하사관이 최고 선임하사 말고도 서너명 정도, 문서수발
심부름 같은거 하는 방위병이 두어명정도 있습니다. )이 그래도 일좀 하는 넘이 들어왔다고 저한테만 일을 주니까 두 고참들은
할일이 없어서 저를 갈구는게 일이었습니다.
내무반에서는 내무반대로 맨날 사무실에만 붙들려 사는 저에게 신참이 내무반 청소도 안하고 뺀질거린다고, 맨날 욕하고 몇
안되는 동기들은 코빼기 한번 볼 시간도 없고 피엑스는 태평양 건너쯤에 있는거고, 사병식당은 일주일에 한두번 가보면 많이 가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제 편이 없었던 거죠.
그 와중에 떠오르는 기억이, 서류뭉치를 잔뜩 안고 길을 가다가, 진짜 말 그대로 걸어가면서 잠이 들었던 거죠. 순간
찢어지는 고통에 번쩍 정신이 들어보니 길가 배수로에 오른발이 빠지면서 콘트리트 모서리에 정갱이가 긁혀 찢어져서 피가 철철 나고
서류는 사방에 흩어져서 나부끼고 있고..
진짜 인생 왜사나 싶어서 한숨을 푹 쉬는데, 지나가던 군종신부, 목에 검은색 카라를 단 장교가 서류를 일일이 집어 챙겨주면서, 제 손을 붙들고 의무대까지 데려다 주더군요.
그러면서 도대체 뭘 하길래 걸어가면서 잠이 드냐고..
그 때 천주교에 대한 제 감정이 극도로 좋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거 진짜 자꾸 서론이 길어 지는데..
하여간 그런 생활을 계속 하다가 그나마 일병 고참 수준이 되었을 때, 첨으로 참모 따라서 안전계원이 해야 되는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사고가 터진거죠. 그것도 대형 사고였는데 언론에도 보도가 되어서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훈련장에서 이등병 하나가 훈련중에 M203 유탄 발사기 불발탄을 하나 주은 겁니다. 그게 총알이 큼직하고 예쁘게
생겼거든요. 이 자식이 그걸 분해해서 기념품 만들겠다고 짱박다가 선임하사한테 걸렸는데, 선임하사가 그걸 빼앗아서 "이게 얼마나
위험한건지 아냐~" 하면서 갈구다가 불발탄으로 그 이등병 화이바를 통통 친겁니다. 그러다가 쾅~ 한거죠.
정확한 명수는 기억이 안나는데 한 열두어명 모아놓고 그 앞에서 그 짓을 하다가 터진겁니다.
웅덩이가 패이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너덜너덜한 살점조각이 되었고, 당사자 둘이야 쪼가리 맞추기도 힘든 상태, 겨우 팔다리 한개씩 떨어져나간 두넘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현장에 참모하고 도착해보니...
헌병은 아직 안왔고, 의무대가 와서 이미 쪼가리 맞추기 작업을 하고 있더군요. 참모는 버럭 하면서 이거 현장 사진도 안
찍고 누가 시체 치우라 했냐고 의무대장한테 욕을 퍼붓고, 저는 잽싸게 들었던 대로 현장 스케치를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디카가 일반화가 안 되었던 시절이고, 사진병은 민심처 소속이라서 오지도 않은 상황이거든요.
매캐한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를 맡으면서 이미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참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던 제 발에 뭐가 툭 채이더군요.
낡은 워커였는데, 누가 이런걸 여기다 버렸어~ 하면서 집어서 저리로 던지려고 그러던 와중에 워커 속에 끊어진 발목이 보이더군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우엑~ 해버렸죠.
옆에서 참모가 낄낄 거리면서, 야야~ 니 그정도에 그래가 인사처 안전계 일 우찌 하노~ 이러면서 비웃고.. 저는 거의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어떻게 수습을 했는지도 모르게 우왕좌왕 하다가 돌아왔는데, 결국 한 일주일 동안 우유 한모금 못 먹었습니다.
그저 찬물이나 한잔씩 마셔도 머리속에 끊어진 뼈며 떡진 근육이며가 보이면서 오바이트가 나오는데..
거의 실려갈 지경이 되니까 그래도 정신이 좀 들더군요.
그게 첫 경험이었는데, 그 뒤로 몇번 더 나가더니 진짜 우습게도 적응이 잘 되더군요. 적응된 뒤에는 감전되어 타 죽은
넘 시체 널어놓은 다이 앞에서 하드 먹으면서 구경하고, 차에 낑겨서 찢어진 시체에서 군번줄 회수하곤 돌아서서 초코파이 먹고..
그거 말고도 군대 가기 전에는 남이 닭 잡는거 구경도 못하던 제가, 군대에 가서 직접 닭도 잡고 토끼도 잡고 개도 잡고.. 심지어 선임하사하고 같이 돼지도 잡아 봤습니다.
생선 손질은 뭐 스테이크 썰어 먹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귀신은 안 나왔냐고요?
산넘들이 귀신보다 백배는 무섭다는게 제 생각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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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제가 전산실로 안가고 인사처로 가게 된 것은 인사처가 갑작스럽게 인력이 모자르게 되어서, 짬밥 밀리는 전산실장 제치고 그저 학벌만 보고 뽑은 결과였답니다.
그것도 현역 시절 내내 100 보병으로 해 놓더니 전역할 때 되니까 나가서 예비군 훈련 편하게 받으라고 900 행정병으로 바꿔 주더군요. ㅎㅎㅎ
물뚝심송@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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