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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토당토의 추억

사는이야기 2007/11/10 00:38 by 알밥





대학시절 신촌에서 자취하기 전에는 안양에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었다.
 
그 시절 아파트 옆동에 살던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농구도 같이하고, 미친 짓들도 같이 하면서 즐겁게 지내던 사이였고, 그 친구와 함께 지내던 시절 얘기이다.
 
그 아파트에서 멀지않은 사거리에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고, 친구와 나는 그 포장마차의 단골 고객이었다. 얘기는 그 포장마차와 포장마차의 주인에 대한 얘기이다. 근데 친구 얘긴 왜 꺼낸걸까?
 
포장마차

<사진이 없어서 훔쳐왔어요.. 흑흑흑~>

포장마차 주인은 15살에 고아원에서 나와 자력으로 공부를 해 가며, 돈을 벌어서 대한민국 4대고시중의 하나인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경기대 법대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나이는 서른에 가깝고 이미 같은 고아원 출신과 결혼해서 애까지 있는 몸이었고, 돈 모이면 다시 복학해서 한두학기 다니고, 돈 떨어지면 또 휴학하고 닥치는대로 공부하고 하던 사람이었다.
 
나이를 넘어서 친해진 그 덕분에 난 거의 매일 포장마차로 출근을 했고, 그가 바쁠 때는 내가 안주도 요리해서 팔고, 술도 팔고, 한가할 때는 그와 함께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이런 저런 얘기로 인생의 한때를 보내던 기억이 난다.
 
새벽에 일어나서 안주거리 사러 시장가는 얘기도 듣고, 정기적으로 상납 뜯으러 오는 근처 경찰서에 근무하던 순경, 동네 양아치들하고도 친해져서 원래 냈어야 되는 보호비도 절감하고, 급할 때는 그들하고 친한 척 하면서 겁도 좀 줘보고..
 
그러던 어느날, 보통때보다 좀 이르게 아홉시쯤 포장마차에 출근을 했는데, 그가 혼자 앉아서 술에 취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나 태어난~ 이 강산에~
 
"초저녁부터 장사할 생각도 안하고 형이 술 다 먹어 버리면 다음학기 복학할 생각이 없는겨?"
 
하면서 갈궜더니, 피식 웃으면서 하는 얘기가..
 
"오늘 조 앞에 수석 가게 있지? 거기 수석 동호회 사람들이 수석 캐고 와서는, 초저녁에 포장마차 아도치고 술 퍼먹었다~ 오늘 장사 다 했어~"
 
였다.
 
"그래? 그거 참 반가운 얘기군. 그러면 일찍 들어가서 애하고 놀기나 하지 왜 술을 먹고 있어? "
 
"너 오면 한잔하려고 기다린거지~"
 
"아~ 그래서 내가 오늘 웬지 일찍 오고 싶더라니까~"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장사도 잘 되었겠다, 이미 원가 뽑은 안주 무제한에 술 무제한으로 있겠다, 평소 팔기 급해 먹어보지도 못하던 안주거리를 구우면서 삶으면서 새벽까지 이어져 버렸다.
 
"야~ 전대가리좀 궈봐~"
 
"알았어~ 알았어~ 저기 대합 남은거도 먹어 버리지? 저거 상태보니까 내일 팔기는 좀 그런거 같은데."
 
"그래, 그래. 대합이고 뭐고 니 먹고 싶은거 다 해봐. 여기 있는거 오늘 다 판거나 마찬가지니까~"
 
우리가 전대가리라고 부르는 안주는 전어였고, 전두환을 상기하며 대가리부터 아작아작 씹어 먹는 전대가리의 맛은 일품이었다.
 
대합은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쌍벽을 이루는 포장마차 최고가 안주였고.
 
사실, 내가 당시 유행하던 NL과 PD에서 상당부분 PD 계통으로 기울어진 것도 그 덕분이었다.
 
지나가다가 들리는 손님들도 대충 모르는 사람은 돌려보내기도 하고, 주인들이 술취해 해롱거리는 거 보고 자기들이 그냥 피해가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은 같이 놀면서 공짜술도 좀 먹고 가고, 하다가 보니 시간은 벌써 새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형, 형수 기다리겠다, 들어가야 되는거 아냐? 내일 시장안가? "
 
"야.. 나도 가끔은 하루정도 놀고도 싶다. 나도 사람이거든. "
 
이러면서 시작된 그의 푸념은 어지간하면 자기 힘든 얘기 안하는 그의 성격에 익숙해진 나에게는 참으로 들어주기 거북한 얘기로까지 이어지고, 즐거운 기분으로 시작되었던 그밤의 술자리는 갈수록 참담해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내 눈에 비친 세상과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세상은 사뭇 달랐던 기억이 난다.
 
왜 세상은 이렇게도 불합리하고 불공평 한 것일까.
 
행복이라는 것은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선물이라는 말은 당연히 거짓인줄 알았지만, 설마 불행이 일부러 착한 사람들에게만 찾아 다닌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거 아닐까?
 
"난 말야.. 내 나이가 한 육십은 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 "
 
그의 넋두리는 계속 되었고, 그는 점점 더 취해가고 나는 점점 더 깨어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은 벌써 새벽 네시, 우리가 먹어치운 술병은 벌써 열서너병이 넘어가고 있었다. 좋은 시절의 얘기지~
 
한병만 먹어도 헬렐레 하는 요즘에 그 때 생각을 다시 하니 내 자신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는 거의 인사불성으로 취해 버렸고, 난 상황의 뒷감당이 암담해서 망연히 앉아 밝아오는 새벽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와 한 열살 아래쯤 되는 그의 젊은 형수가 아이를 업고 나타났고, 난 그 형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는 포장마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안주거리 다 갈무리하고, 각종 도구들 씻어서 정리해 넣고, 포장마차를 포장해서 이동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놓고, 집에 가려다가 생각해보니..
 
술취한 남편 하나도 버거운 형수에게 포장마차까지 맡기고 도망가는게 말이 안되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포장마차 한쪽켠을 치우고 형을 올려 눕힌 다음, 줄로 묶어 주고, 내가 리어카를 끌고, 형수는 애기업고 뒤에서 밀고 하면서 형수가 일러주는 대로 형의 집을 향해 출발을 했다.
 
한 삼십분 걸었을까? 꼬불꼬불한 골목 안으로 한참을 걸어들어가서 무너져가는 낡은 주택가 한켠 전봇대에 포장마차를 쇠사슬로 묶고, 형을 부축해서 셋집 단칸방까지 데려다가 눕혀주고, 미안해하는 형수가 주는 더운 보리차 한잔 마시고 길을 나섰다.
 
집에 돌아오니 벌써 일곱시..
 
씻는둥 마는둥 하고 누워서 나는 사자의 꿈을 꾸며 잠이 들어버렸다.
 
하루죙일 자고 저녁에 나가보니 포장마차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삼일인가? 포장마차는 나오지 않았고, 그 다음날 드디어 포장마차는 다시 나타났다.
 
"왜 안나왔어? 며칠 안보이데~"
 
"나도 다 됐나 보다. 좀 앓았어."
 
"어이구.. 겨우 그거 먹고 앓아 누울 정도면 다 된거네.."
 
"그러게 말이다.."
 
"오늘 장사는 내가 해 줄테니까 좀 들어가서 누웠다 오던가.."
 
"내가 차라리 전대가리한테 나라를 맽기지, 너한테 포장마차를 맽기겠냐?"
 
"이런 씨불~ 비교할데에 비교를 해라~"
 
그러면서 모든 것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내가 신촌으로 거처를 옮기기 전에 포장마차는 사라졌다.
 
물론 사라지기 전에 거하게 해단식도 가졌었다. 그 이후로는 그 형을 사당동에서 한번 우연히 보기는 했다. 군포에 있는 무슨 공장에 다닌다는 얘길 들었는데, 거기서도 멀쩡히 다닐 인간은 못되니 또 어딘가에 가서 사고를 치겠지~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그 포장마차와 포장마차 주인에 대한 얘기는 끝이 난다.
 
 
 
 
 
근데 왜 얼토당토의 추억이냐고?
 
그 포장마차의 천막 포장에 파랑 페인트로 춤추는 글씨체로 이렇게 써 있었기 때문이다.
 
얼!토!당!토!
 
그 형의 별명은 얼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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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물뚝심송님께서 2007년 6월 22일에 찌질넷에 발표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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