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양극화는 그 현상
자체를 분석하는 것부터 매우 까다롭습니다. 1973년의 미국 국민 실질 소득의 median이 2005년보다 12% 높다는
연구결과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반해 이와 같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에 실질적으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건 거의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노무현
정권 스스로가 선전인지 실토인지 몰라도 양극화 심화를 자인했습니다. 중산층의 삶이 갈수록 무너지고 있다는 기사도 자주 봅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서민의 삶의 질이 갈수록 내려가서 이제 위험 수위에 거의 육박했다는 것도 대체로 사실로 공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거 국민 질실 소득의 median을 현재와 비교하는 학문적인 방법으로 양극화를 입증하는 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국내의 소득에 대한 통계자료가 너무나도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의 도시가계조사 자료가 그나마 유일한 자료입니다.
그나마 유의미한 건 지난 10년치 자료이고, 갈수록 여성 배우자의 사회 참여율이 높아지기 때문에 전과 비교한 가계소득의 순수
증가를 알아보려는 의도가 빗나갈 수도 있습니다. 여성의 사회참여증가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현재 국민 가계 실질소득의
median이 과거 어느 때보다 낮아졌다는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는 미국식 양극화는 아닌 듯싶습니다. 반면
median이 아닌 하위 20%의 가계의 실질소득은 거의 4~5년째 하락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다 삶의 질이라는
factor까지 더하면 지난 4~5년 동안 학술적이던 실질적이던 양극화는 실재했고 심화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국토의 극히 작은 부분에 국민 절반이 모여 살고 있으므로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이고 그 비좁음으로 인한 각종 불편이
쌓이는데다 우리나라는 가계 소득의 상당부분을 사교육비로 지출되고 가계 생필품으로 분류되는 품목들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고, 자신의 경제력과는 별개로 무작정 남 따라 하기 식의 과잉지출도 빈번하게 관찰됩니다. 중간 소득 계층이면서도 자식 교육에
대한 욕심 때문에 서울 강남의 대치동이나 도곡동 아파트에 무리해서 세 들어 사는, 그런 방식으로 생활하는 가구들도 적지 않고,
이들 삶의 질이나 생활수준은 최하층과 대동소이합니다. 상황을 대략 정리하자면 소득 측면에서는 중간층이 거의 그대로 있는 가운데
상위 20%와 하위 20%의 양극화라 보여지고, 수도권 등의 부동산 가격 증가율이 소득 증가율을 훨씬 웃도는 등의 열악한 현실을
감안하면 전반적인 양극화 현상은 적어도 지난 4~5년 동안 심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조가입자와 비가입자 사이에 나타나는 근로조건, 장래성, 사회복지, 안전성의 극명한 차이에서 오는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경제의 전반적 양극화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양극화라는 화두를 국민에게 본격적으로 던진 게 노무현 정권이듯, 노무현 정권은 그 양극화를 해소하려고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그 중 대표적이고 최우선적이었던 게 부동산값 안정화 정책입니다. 무려 30여 차례의 부동산정책을 발표하면서 매번
노무현 정권은 전투적이고 감정적인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버블 세븐’이라는 단어를 정부가 공공연히 사용하면서 시장에 개입하고
시장을 통제하려 했지만 결국 대 실패로 끝났고 서민들의 부담은 전보다 가중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직후 공포정치 시대에 권력을
잡은 로베스피에르가 서민의 생활고를 덜어주려고 우유 가격을 강제로 인하한 사건은 아주 유명하게 전해집니다. 잠시 우유 값이
내리는가 싶더니, 채산성이 떨어진 낙농업자들이 단체로 젖소를 도살해서 파는 등의 결과로 우유 공급이 급격히 감소해서 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으며 실제 우유가 웃돈을 받고 거래되는 가격은 강제 인하조치 이전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는
공포정치로 무장했음에도 경제정책에서 참패했고 이 실패는 얼마 후 그를 단두대에 오르게 하는데 일조했습니다.
서울 강남권의 중형 이상 아파트는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공급이 실질적으로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 이후 수도권
인구집중이 가속화 되는 중 지역별로 제공하는 생활의 편의수준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한 결과 소비자들이 자기 스스로 본인에게
최적이라고 생각하는 지역을 찾아서 스스로 이동하는 '발로 하는 투표(voting by feet)'의 결과로 형성된 측면이 투기로
인해 형성된 측면보다 강했던 것이 당시 아파트의 가격이었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그 지역 아파트의 공급을 늘려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가격균형에 도달하게 하는 대신 그 가격은 버블이라고 단정하고 강제로 내리려 했습니다. 그것에 실패하자 여러 군데의 뉴타운,
혁신도시, 기업도시, 행정도시 등을 지정해서 대응했는데 이는 강남권 아파트 가격을 내리는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의
부동산 가격을 높이고 새로운 투기를 조장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강남권 고등학교의 명문 대학 진학률을 끌어내리기 위해 대학입시의
3불 정책등 교육의 하향평준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인은 정부의 능력에 대한 착각, 즉 정부가
특정한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만용에서 온 착각이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위기의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우선 정권 출범 초 사상 초유의
'신용불량자 400만명' 이라는 위기상황을 서두르지 않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원칙을 따르며 성공적으로 대처했습니다. 바로 그
해 경제가 3.1% 성장했으나 일자리는 3만개가 줄었는데도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았고, 그 이후 임기를 마칠 때까지
저성장의 고통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그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그 밖에도 좌우 양쪽의 비난 속에서, 특히 노동계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소위 '비정규직 보호법안'을 입안하고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역시 차분함과 인내력을 보여줬습니다.
많은 분들이 양극화의 해소방안으로 ‘복지정책의 강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복지정책은 양극화의 사회뿐 아니라
그 밖의 모든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고, 잘 정착된 복지제도 없이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결코 진입할 수 없으며 중진국의
위치도 위태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에 의해서 시행되는 복지정책은 양날의 칼입니다. 잘못하면 자신을 벨 수도 있습니다. 복지정책의 시행은 예산
없이는 할 수 없고, 자발적 민간부분의 복지지출이 아닌 한 정부는 그 비용을 스스로 (대부분 국민으로부터) 조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긴요한 곳에 알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흐지부지 낭비하기도 쉽고, 곪고 있는 곳은 엄지손가락인데 검지손가락에 붕대를
감기도 합니다. 아픈 이빨은 놔두고 생니를 뽑아서 상황을 최악으로 치닫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가뜩이나 안 좋은 양극화 상태인데,
자칫 실수는 양극화를 더 심화 시키게 됩니다.
실제로 양극화를 해소하는 최 우선의 방법은 경제가 공정하게 활성화 돼서 일자리가 스스로 만들어지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정부가 스스로 조달해야 할 비용이 없기 때문에 위험도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구직자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크게 부족한데 반하여, 수많은 중소기업에는 일손이 크게 부족한 역설적인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기업과 노동시장에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지원강화 등을 시행한다 해도
저소득층에게 곧바로 혜택이 가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이며 잘못되면 양극화를 오히려 가속시키게 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정부가
어려운 제정을 투입해서 만든 일자리들 중에 제대로 되고 오래가는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정확히 제공하는 편이 낫을 거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매우 중요한 것은 국가와 정부가 공정한 룰에 따라서 정치 경제적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치의 원칙을 지키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정부가 당연히 이행해야 하는 필수 조건이지만 어느 국가나 사회를
막론하고 완벽히 지켜지는 것은 불가능함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벗어난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것부터
바로잡지 않고서는 어떤 복지정책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습니다.
하나의 단적인 예만 들겠습니다. 노무현 정권 중 2년 여 동안 민간경제단체인 대한상의회장을 맡으면서 노무현 정권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비웃어서 ‘미스터 쓴소리’ 라고 언론에서 불러주던 전 두산 그룹 회장 박모씨는 재벌총수 중에서
참여정부와 가장 껄끄러운 관계를 가졌던 인물입니다. 자신은 고고한 척 쓴 소리를 하던 중 형제간의 폭로전쟁으로 그의 비리가
밝혀졌는데, 그가 시인했고 기소 당한 내용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횡령이고 이는 횡령 및 손실 액수가 50억 원
이상일 때 적용되는 죄로, 법정 최고형이 무기징역인 죄목이며 그 기소내용에 10년 넘게 회계부정을 일삼으면서 비자금을 조성한
'불법행위의 지속성', 그리고 그 비자금을 주식인수대금 이자를 대신 내는 데 쓰거나 총수 일가 생활비로 쓴 '파렴치성'이
포함되었지만 검찰 스스로가 그를 구속하면 국익에 심대한 손상이 온다는 황당한 이유를 대면서 불구속했고, 1심 재판에서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며 얼마 후 사면 돼서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했습니다.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양심이 남아서인지 그가 언론에 남긴 말이, 미국 같았으면 ‘나는 몇 십년 중형에 처해졌을
것’이었습니다. 정부에게 밉보인 재벌 총수에게 내린 벌이 이 정도였으니 다른 재벌들에겐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는 순환출자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총수는 극히 작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장악합니다. 하지만 계열사가 실패해서 큰 손실을 입어도 자신은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할 뿐 아니라 재산상의 손실도
거의 입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관습적으로) 잘나가는 계열사의 이익금은 자신의 비자금이나 자신의 지분이 가장 많은 계열사로
빼돌립니다. 그러다 적발되면 자신이 구속되면 경제위기가 온다는 등의 이유로 빠져나가곤 하는데, SK글로벌 분식회계와 워커힐 주식
스왑거래 배임행위로 총수가 구속되고, 소버린과 경영권 다툼을 한 이후 SK그룹의 위상과 투명성은 물론 국내 기업의 위상과
투명성이 모두 함께 올라가 그것을 바탕으로 주식시장이 크게 오른 것은 금융계 종사자들이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경제주체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 명확하게 정의되고, 이를 어겼을 때의 처벌에 예외가 없어야만 우리 경제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복지정책을 정부가 시행하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방식으로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정책을 구사한다고 해 봤자, 부자들은 세금이 부과되지
않거나 덜 부과되는 곳으로 자신의 소득원을 옮기거나 조작할 것이고, 정부는 기대한 만큼 세수입을 못 올려서 저소득층과 직장
근로자들이 피해를 입는 소비세 등의 다른 종류의 세금을 추가로 거두거나,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도 있는 국공채를 발행해서
복지정책으로 지출한 부분을 메울 텐데, 이 어는 경우에도 저소득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쓰고 싶은 말들은 참 많은데 서두가 너무 길어져서 나머지는 간략하게 쓰겠습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복지정책은 양극화
해소에 참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맞습니다. 그런 만큼 신중하고 겸손하고 정확성을 기해서 시행해야 합니다. 정부가 시장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오만은 버려야 합니다. 경제에서는 이미 일어난 현상의 원인을 찾는 일도 탐정소설에서 범인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의외의 답이 따로 존재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미국의 대공황은 1929년 10월의 주식시장 폭락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미국 정부는 아주 오랫동안 대공황의 원인을 이곳 저곳에 전가시키면서 갖은 규제를 만들었으나 한참이 지난 1963년에 프리드먼에
의해서 그 정확한 원인이 밝혀졌으며, 그 원인은 바로 다름아닌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했던 국가기관인 연방준비제도가 잘못된
통화긴축을 시행한 것이었습니다. 현 연방준비제도 이사장인 버냉키 박사는 그 사실을 시인하고 아주 뒤늦게나마 (당시)
연방준비제도의 잘못을 사과했습니다.
양극화를 타개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복지국가에 이르기 위해서 복지정책은 계속 수행 되야 하지만, 항상 심사숙고를 거친 후 수행되어야 하고,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이 올바르게 잘 수행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로미오@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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