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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 지났지만 7월18일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날입니다.
1936년 7월에 시작해서 1939년 4월에 끝났으니까 햇수로는 한 3년, 스페인 전역을 몸서리치는 전쟁으로 휘몰아갔던 끔찍한 기간입니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공화파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 온건부르즈와지 등 좌익세력이 연합해서 만든 '인민전선'이 1931년 이래 두번째로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고 공화국 정부를 세웁니다. 당시 공화국 정부는 보수적인 스페인에 근대적 법률을 만들고, 교회와 국가를 분리시키며, 스페인 사람들도 이혼할 수 있는 이혼법을 만들었으며, 일반 모든 국민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보통교육을 실시하고,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합니다. 한마디로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는 일련의 개혁을 실시한 것이지요.
 
그런데 공화국 정부가 실시한 반교권운동은 개혁적인 정부와 전통 보수그룹사이에 필연적으로 갈등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남부의 봉건적 대토지 소유자와 북부의 근대적 농가와의 대립,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남부의 대다수 프롤레타리아와 공업화된 발전된 북부와의 갈등을 비롯하여 공화국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득권을 빼앗길 것을 우려한 전통 봉건세력, 대토지소유자, 보수적 교회, 왕당파 추종 무리 등 우익세력과의 사이에 사회적 긴장이 야기되고 사태는 일촉즉발로 나아가게 됩니다. 좌우 두 파벌간의 이데올로기로 사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되는데, 계몽적이고 친서방 지향 세력은 지방의 고립주의 전통세력과 충돌을 일으켰고 정교분리를 주장했던 자유주의파와 전투적인 카톨릭세력, 그에 기반한 팔랑헤당, 우익세력이 맞붙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참고로 지금도 그렇지만 바스크 지방, 바르셀로나의 카탈란 지방, 안달루시아 지방 등은 공화파가 쎈 지역입니다. 일전에 바르셀로나를 한번 갔다 왔는데 공화파 최후의 거점 도시답게 다른 도시에 비해서 격렬한 전투가 많이 벌어져 많이 부서졌는지 옛 건물 사이사이로 새로 진 건물들이 많이 보이더군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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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내전초의 세력판도. 파란색이 왕당파 우익 민족주의파들의 점령지역. 빨간색은 공화주의파 세력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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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말, 내전 말기의 바뀐 세력판도


이런 상황에서 1936년 7월18일, 프랑코가 이끄는 군대가 스페인 남부에서 무장봉기하면서 처절한 스페인 내전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보듯이 스페인 내전은 곧 국제적인 분쟁으로 바뀌게 됩니다. 당시 프랑코가 이끄는 팔랑헤당 왕당파나 공화국 정부는 모두 외국의 원조를 받습니다. 왕당파는 독일, 이탈리아로부터 공화국 정부는 쏘련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데(멕시코 정부도 공화국 정부에 쪼끔 지원합니다) 공화국 정부가 지원받은 것은 왕당파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로부터 정치, 군사 양면에 걸쳐서 받은 전폭적인 지원과 비교하면 쨉도 안되는 거였습니다. 피카소의 그림에서 유명해졌듯이 독일의 게르니카 폭격은 그 한 예인데. 사실 이 폭격은 독일공군 슈투카가 자기들이 만든 무기 좀 실험해 볼려고 공화주의자들하고는 아무런 연고없는 시골 마을 게르니카에 폭격을 해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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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공군 슈투카 폭격기


당시 서방 민주국가였던 영국이나, 프랑스 , 미국 등은 한창 뜨는 독일을 건드리기 싫어서 중립을 표방하면서 불개입정책을 폈고, 아마도 더 큰 이유는 스페인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한 나머지 수수방관한채 공화국 정부에 일체의 공식적 원조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전쟁도 우익 프랑코의 반군이 이겼으면 은근히 바라고 있었지요. 이런 서방 민주국가들의 무관심, 의도적인 불개입이 자유, 민주에 입각한 공화파 스페인을 비극으로 몰아갔던 겁니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이 정부차원에서는 중립을 표방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던 반면, 많은 젊은 이상주의자들은 자유, 민주의 가치를 지키고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국제의용군에 지원을 합니다. 당시 국제의용군에는 50여개나 넘는 나라들에서 많은 이들이 참가했습니다. 심지어 볼리비아 출신 젊은이들이 이 전쟁에 참가해 싸웠는데 제가 그 사실 알고 깜짝 놀랬습니다. (여기 몇몇 찌질이도 그런 상황에 있었다면 참가했을지도 모르지요). 특히나 영국의 조지 오웰,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 미국의 헤밍웨이,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1991년 노벨문학상 수상), 프랑스의 시몬느 베이유 같은 작가나 지식인들이 전투에 참가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누가 또 더 있을까요? 아시는 분 있으면 더 추가해 주시길), 당시 국제여단(international Brigade)에 속한 의용군들은 정말로 공화국의 가치를 위해서 용감하게 싸웠고 국제연대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감동적인 모습을 전투에서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항가리, 폴랜드, 영국 여단 등 독립적인 여단이 많이 있었는데 특히나 미국인들로 구성된 '에이브러험 링컨 여단'은 다른 여단에 비해서 가장 뛰어난 여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스페인 내전에 참가했던 국제여단 소속의 생존자가 32명이 있는데 영국이 20명으로 가장 많고 미국인은 4명,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볼리비아인이 1명씩 있습니다. 연세를 보니 거의가 80대 후반에서 90대더군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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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컨여단의 기장     - 국제여단의 기장    


아무튼 50만에서 100만이 죽은 이 내전은 결국 반군의 승리로 끝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중 부역 혐의로 처형 당했고(유명한 "피의 결혼식"의 작가인 가르시아 로르카도 38살의 나이에[물대장보다 조금 어린 나이에] 민병대에 끌려가 처형당했음),  수많은 사람들을 망명자로 내몰았으며, 그리고 그때의 전쟁의 기억은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트라우마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진보냐 공화냐, 또는 우익이냐 보수냐? 이 두 스페인 사이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고통은 아마도 오래 갈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공화국 정부가 붕괴되고, 이어 스페인은 냅다 40여년간의 독재체제를 겪게 되는 거지요.
 
마드리드에서 차로 한 1시간 정도 가면 "전몰자 기념비"가 있습니다. 독재자 프랑코가 찢어진 스페인인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 억지로 화해를 시키기 위해서 만든 거대한 인조 무덤입니다. 바위를 폭파하고 뚫어 거대한 동굴을 만든 뒤, 거기에 대형무덤을 만들어 내전시 죽은( 공화파나 우익 왕당파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유해를 안치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 하나님의 자비를 내리시사 이 거대한 동굴에 성당을 만들었습니다,1940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958년에 끝났으니 물경 18년이 걸린 셈인데 이 공사 및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은 바로 프랑코 독재체제에 싸우다 감옥에 들어갔던 정치범들이었습니다.
 
프랑코가 만든 전몰자 기념비를 보면서 두한이 형님이 있을 때 세워진 독립기념관, 북한의 개선문 따위의 무미건조한 대형 석조건조물을 생각했습니다. 왜 독재자들은 하는 발상이나 짓거리들이 이리도 비슷할까요?
 
계곡 산위에 세워진 전몰자 기념비, 그러니까 동굴은 높이가 15미터에 전장이 264미터가 되는 거대한 암굴입니다. 성모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슬퍼하는 모습의 상이 입구 전면 위에 조각되어 있고 그 뒷편으로 높이가 150미터가 되는 거대한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대형묘지에 당시에 죽어간 30만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고(물론 프랑코 유해도 안치되어 있음), 그리고 안에는 이들의 영혼을 위로할 거대한 바실리카 성당이 있습니다. 근데 이 어두운 침묵 안에서, 그리고 시간의 유전 속에서 두 양극의 사람들은 정말로 화해를 했을까요? 더 무서운 것은 우리들의 망각 아닐까요?
 
광주 5.18 묘지에 갔을 때도 그랬었는데, 묘지를 가거나 누구 무덤에 갈 때 하늘이 너무 맑으면 더 서글픈 마음이 들곤 했는데... 이곳 전몰자 기념비를 나올 때도 똑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날 따라 하늘은 왜 그렇게도 맑던지,,,,주위는 너무도 조용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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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몰자 기념비(또는 산타크루스 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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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구 전면의 마리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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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 바라본 전몰자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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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식한 석조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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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내부. 끝 안이 성당임. 이곳은 절대 사진금지 구역. 찌질넷 독자를 위해서 그래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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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명한 하늘과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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