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Time과 Newsweek이 비슷한 기사를 올리곤 하는데, 지난주가 그랬습니다.
Time은 "He Won His Battle With Cancer" 라는 제목으로 Newsweek은 "We Fought Cancer…And Cancer Won" 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제목에서 느끼시듯 타임은 약간 낙관적으로 뉴스위크는 상당히 비관적으로 기사를 시작합니다.
두 기사를 요약하면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통한 "암과의 전쟁" 선포 이후, 부분적인 전투에서 승리(소아 백혈병의 경우 현재 80% 이상이 성인까지 생존합니다)는 있었으나 전쟁은 결국 암의 승리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1950년에 비해 2005년의 암에 인한 사망률은 겨우 5% 떨어졌을 뿐입니다. 같은 기간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이 64% 감소한 것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정도이죠.
하나의 암세포가 세계적으로 똑똑하기로 이름난 100명의 암전문 과학자보다 훨씬 더 영리하다거나, 지난 40년 동안 우리는 암에 걸린 쥐는 수만마리 치료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단 하루의 시간을 더 줄 수도 없었다는 자조까지 기사에 그대로 나옵니다.
그리고 암의 정복을 위해 만들어진 NCI(National Cancer Institute)의 닭짓 3종세트가 나오더군요.
1. Denny Slamon
UCLA에 있던 Denny Slamon은 DNA의 변형에 의한 암의 발생을 관찰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암이 생긴 다음에 치료하는 것 보다, 아예 어떤 유전자가 관여 되어서 암이 생기는 지를 관찰하고 이에 대한 약을 만드는 건 어떨까?" 하지만 NCI의 반응은 "지금 낚시하자는 겁니까?" 였답니다.
결국 그는 개인 투자를 받아 암세포가 정상 세포보다 훨씬 더 빨리 자라는데 관여하는 변형 유전자를 찾아내었고, 이 유전자(여러 HER2)를 작동하지 못하게 붙들어 메는 약, 그 유명한 유방암 치료제 Herceptin 이 개발되어 1998년 FDA의 승인을 받게 됩니다.
2. Brain Druker
만성 골수암을 연구하던 그의 아이디어는 암세포가 빨리 자라나는데 관여하는 물질을 찾아 이를 억제하는 약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그거 뭐 새로울 것도 없은 아이디어인데..." 이었기에 시간낭비라고 생각되는 NCI에 연구제안도 하지 않고 개인 투자를 받아 이상 백혈구의 증식에 관여하는 물질을 찾아내었습니다.
암세포 증식에 필요한 이 물질을 억제하는 약에 대한 임상 실험에 NCI는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았고, 결국 개인투자가의 돈으로 "놀라운 기적의 항암제" 글리벡(Gleevec)을 만들어 냅니다.
3. Judah Folkman
닉슨이 암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 바로 그해, 한 이름없는 과학자가 암세포의 전이(암 환자의 90% 이상은 전이된 암세포에 의해 사망합니다)에 있어 필수적인 과정인 Angiogenesis에 대한 논문을 냅니다. 암세포는 이상증식을 해야 하는데 이에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혈관을 자라게 하여 혈액으로부터 그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게 된다는 주장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암의 유전자가 어떻고, 어떤 단백질이 관여하고와 같은 암에 대한 직접적 연구를 하고 있을때 그는 "그거 말고, 암세포가 살아가려면 많은 영양분이 필요한데, 이걸 끊으면 암세포는 배고파서 굶어 죽게 될거야"라고 한거죠.
많은 과학자들은 그에게 "너 설마 지금 네 주장을 진짜로 믿는 건 아니지?"라고 비웃었고, 당근 NCI는 그의 연구를 위한 제안을 "당신의 아이디어는 단지 상상력의 산물일 뿐이야"라며 거절합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결국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항 Angiogenesis 약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직장암과 폐암환자에 사용되는 엄청나게 비싼 아바스틴(Avastin)입니다.
마지막으로 뉴스위크의 기사는 그동안 소홀히 해온 "암세포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건강한 세포가 암세포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야 말로 획기적 대처방안이라 하는데요, 그 방법이 돈 버는 것과 별로 관계가 없어, 이에 대한 연구 지원을 받기 아주 힘들다고 합니다. 제시된 것은 "브로콜리 같은 야채 많이 먹고, 담배 피지 말고, 스트레스를 줄여라" 라는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들입니다.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라는 이젠 진부하기까지 한 문장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사람과 그 고통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비되며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푸후@찌질넷
한RSS를 이용해서 보다 편리하게 알밥로그를 구독하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