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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 나라가 망한다면

사회 2008/09/17 09:33 by 알밥






무슨 이유로 망하게 될까?

이 질문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한 국가가 망해가는 과정은 아주 다양한 원인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 원인들이 모두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그 구성원들이 자포자기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됨으로써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무너져 간다고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득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 중에서 바로 이게 제일 심각한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한번 얘기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바로 계층간의 이동이 힘들어지는 상황에 대한 것입니다.

삼국지나 초한지, 기타 동양의 역사서나 국가들의 흥망을 다루는 책들을 보면 잘나가는 국가의 형성과정에는 반드시 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하는 바로 그 부분입니다.

이게 유능한 인물들을 잘 기용해서 정부가 효율적이 되고 강해지고 뭐 이렇게 된다는 부분으로 쉽게 받아 들일 수 있겠지만 오히려 숨은 뜻은 이게 더 클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신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사람들이 요직에 등용되는 상황은 사실 기득권층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괴로운 상황입니다. 음서니 뭐니 하는 제도들이 잘나가는 국가 초기에는 항상 보이지 않다가 망해가는 국가에서는 활발하게 적용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일 것입니다. 국가가 어느정도 안정이 되어가면서부터는 기득권층들의 욕구가 강해지고, 이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갈수록 적어짐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누려야 할 권리는 확장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해 나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나름대로 공동체가 안정이 된 이후에도, 기득권층이 비기득권층과 끊임없이 "누려야 할 권리"를 놓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면, 솔직히 기득권층 입장에서는 내가 뭐하러 살았나~ 싶기도 하겠죠.

하지만 이 문제는 어느 특정 계층에 이익을 주느냐 마느냐 하는 분배의 문제 이전에 사회 전체의 생명력과 관계가 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겁니다. 계층간 이동이 고정되어 가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암담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은 기득권층의 따까리 노릇 밖에 없고 그 조차도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불안한 일자리라면, 도대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무슨 낙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요? 바로 혁명의 만조기로 이어집니다.

안그래도 기득권층은 사회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들을 스스로 보호할 힘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는 바로 보유하고 있는 자산으로 나타나겠죠. 이 자체가 잠재적으로 계층간 이동을 방해하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자 이제, 현재 대한민국에서 계층 이동이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아파트 한채 변변한 거 가지지 못한 부모 밑에서 당신이 태어났다고 생각해 보죠. 당장 누워 잘 공간을 위해 부모의 수입은 거의 다 소진되어 버리는 상황입니다.

당신은 아마 대학의 문턱을 밟아보는 것 조차 힘이 들겁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당신은 고액과외와 첨단 교습법으로 무장한 기득권층의 자녀들을 상대로 학원비조차 버거워하면서 대입 경쟁에 나서야 될 겁니다. 십중팔구 당신은 고교 시절에 편의점 알바나 주유소 알바를 하다가 열받아서 오토바이 한대 지르고 몰려다니다가 별이나 한개 달게 될 지도 모릅니다.

다행스럽게도 당신이 천부적인 지적능력을 타고나서 우수한 성적으로 일류대학에 들어갔다고 칩시다. 뭘 전공하시겠습니까? 뛰어난 실력으로 백프로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주는 미국 대학의 어드미션을 받아서 유학갈 자신이 있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극소수의 기득권층에 한발 들여 놓은 셈이 되겠지만 말입니다.

변변찮게도 촛불시위 몇 번 나가고, 알바 몇 탕 뛰다 보면 졸업할 때가 다가옵니다. 물론 2년 정도의 세월은 군대가서 허송해야 할 겁니다. 기득권층의 자제들은 그 사이에 아무것도 안해도 물려받은 아파트 값이 올라서 이미 몇억씩 확보하고 기다릴 겁니다.

장사를 하시겠습니까? 대기업의 연구원이 되시겠습니까?

운 좋아서 대우 좋은 큰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살 길이 열렸나요?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 아파트 한채 구하기는 등뒤에 달라붙은 거대한 짐덩어리입니다. 아이들은 자라가고 걔들 학원비 대기 바쁩니다. 막상 애들 커서 숨좀 돌리려고 하면 바로 권고퇴직이 날아올 겁니다. 이제 당신에게 남은 선택은 칼국수 집을 개업해서 홀랑 날릴 것인가, 만두집을 개업해서 홀랑 날릴 것인가에 대한 선택뿐입니다.

장사를 선택하셨다고요? 장사가 아니라 기발한 아이디어에 기반한 비즈니스를 시작하셨다고요? 조만간 부모집 담보로 얻은 대출금까지 홀랑 날려먹고 신불자가 되거나 면책, 파산, 회생 서비스를 알아보시게 될 겁니다. 왜냐고요? 당신의 아이디어가 나쁘면 나쁘니까 망하고, 좋으면 대기업이 그 아이디어를 강탈해가게 될 겁니다. 사법기관은 당신을 어떤 형태로든지간에 보호해 줄 리가 없습니다.

이미 이 사회의 사법기관은 법리에 따른 결정 보다는 권력에 따른 결정을 내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계층간의 이동을 포기하셔야 되는거 아닌가요?

이런 미래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당신은 그래도 평생을 투자해서 개같이 벌려고 노력만 하다가 개죽음을 하실 건가요? 생각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그래선 안될겁니다. 반사회운동의 선구자가 되려고 노력하시게 될 겁니다. 당신이 안한다면 아마도 당신의 자식들이 그 길로 들어서겠죠.

물론 이 모든 문제는 비율의 문제입니다.

계층간 이동이 완전히 막혀버리는 사회는 없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 자신만은 그게 가능할지도 몰라~ 라는 환상이 여러분의 판단을 흐리고 있고, 그걸 위해서라도 바늘구멍은 항상 열어 놓습니다. 그러나 그 바늘구멍은 선택된 극소수에게만 진입을 허용하고 대다수의 사람은 좌절이라는 넓은 문이 기다리고 있게 되는거죠.

이렇게 그 바늘구멍과 넓은 문의 격차가 점점 커질 때, 이 사회는 붕괴를 향한 발걸음을 옮겨 놓게 되는 겁니다.

그 격차를 줄이는 길이 바로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밟아야 하는 길입니다. 이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면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사회가 붕괴하게 됩니다.

교육도 그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관점에서 문제점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며, 시장경제의 룰도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한 관점에서 철저하게 지켜져야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계층간 이동의 가능성을 확대해 주지 않는다면 필연적으로, 확률적으로 분명히 탄생하는 비기득권층의 특출한 자녀들이 이 사회를 붕괴시키려는 운동가로 성장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제 생각입니다.

이 나라가 망한다면, 계층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등장하는 사회 불만세력의 비율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되면서 망하게 될 겁니다.

이 국가를 망하지 않게 유지하려면 이 점을 분명히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물뚝심송@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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