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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한 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펴냄


이 책의 원제는 "The conscience of a Liberal", 책 내용 중의 맨 마지막 장의 소제목과 같다. "진보주의자의 양심"
 
크루그먼은 책의 결론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에서, 지금이 최근 20여년간 이루어졌던 보수주의의 반격을 격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이는 진보정권의 탈환과 국민의료보험의 실현으로 가시화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약화일로에 있는 노조의 권한을 회복하여 중산층의 시대를 열었던 뉴딜정책을 완성시키는 것을 진보주의자의 사명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추동하는 원천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염원이며 그것이 곧 진보주의자의 양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심오한 뜻이 담긴 멋들어진 원제를 "미래를 말하다"라는 밋밋한 제목으로 바꿔버린 것이 불만이긴 하지만, 책 전체의 내용을 봤을 때 원제가 책의 내용을 완전하게 대변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그래서 새로운 제목을 붙인) 번역본 출판자의 판단에는 동의한다.
 
이 책이 담고있는 폭넓고, 깊이있고, 다양한 내용들을 담아내기에는 "진보주의자의 양심"이라는 제목은 왠지 협소하고 제한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책이 나에게 일깨워준 사실과 통찰 등을 리뷰 하나에 담아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부끄럽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은 부의 과도한 집중이 사회를 궤멸위기로 몰고갔던 시기와 진보주의가 풍요롭고 희망에 넘치는 사회를 이루어냈던 명백한 사례가 미국의 현대사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부끄러움을 조금 줄여주는 것은 책의 절반 이상에 걸쳐 위의 두 사례를 설명하는 동안 크루그먼이 독자들을 향해 "이럴 줄은 몰랐지?"하고 얘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내내 풍기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저자 스스로도 이 책을 쓰기 전까지는 "이럴 줄은 몰랐다"고 얘기하는 부분도 있는데, 정작 그것이 크루그먼이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여러가지 사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경제적 변화가 정치적 변화를 선도한다"는 명제가 지극히 기계적이며 경제원론에만 입각한 편견, 혹은 허상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기술의 발달과 세계화같은 비인간적인 힘에 의해 미국의 소득분배 격차가 심해지면서 극소수 엘리트 집단이 나머지 집단과 분리됐고, 이 엘리트집단이 공화당과 결합하면서 보수주의의 부활이 이루어졌다는 시중의 이론을 배격한다.
 
크루그먼은 이에 반해 미국의 현대사를 볼 때 정치적 변화가 경제적 변화를 주도해왔고, 일단 그런 변화가 발생하면 그 상태가 상당 기간 동안 지속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역사에서 부의 집중이 극도로 진행된 시기를 "도금시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1900년을 전후한 시기까지로 보는 "도금시대"를 저자는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뉴딜정책을 모토로 당선되기 직전까지의 시기로 연장하여 "긴 도금시대"로 명명하고, 그 시대가 루즈벨트에 의해 단절적으로 종결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도금시대-대공황-뉴딜의 단계가 경제적 변화에 의해 서서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루즈벨트의 정치적 과단성이 도금시대를 단칼에 끝장내고 뉴딜을 거의 하루아침에 미국의 국가정신으로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루즈벨트의 뉴딜은 2차대전을 거치면서 전시동원을 "빌미"로 부유층에 대한 소득세를 극적으로 강화시키는 과정을 거쳐 이후 공화당 출신 대통령도 뉴딜의 테두리를 벗어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위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는 미국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등한 경제번영으로 이어졌다.
 
1982년 레이건의 집권으로 가시화된 보수주의의 부활은 1950년 무렵부터 도금시대로의 회귀를 꿈꾸며 진보주의를 공격하고 대중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 방법을 다각적으로 모색해온 보수세력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였다. 경제환경의 변화가 보수세력의 부활을 견인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권력을 쟁취했으며 그 전리품으로 경제환경을 변화시켰다.
 
정치가 경제를 주도한다는 크루그먼의 주장은 보수주의가 득세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데에도 역시 적용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도저히 대중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보수세력의 주장은, 흑인, 공산주의, 종교, 히피, 최근에 이르러서 알카에다에 이르기까지 "증오하고 저주할 대상"을 제시하고 거기에 진보주의를 연결시켜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허위에 가까운 프로파간다로 포장하여 슬쩍 끼워넣는 방식으로 확산되어왔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큰 문제가 없었던 1950~70년대의 "풍요로운 경제"가 보수주의의 정치적 공작에 의해 "불평등의 경제"로 부당하게 변화됐다는 얘기다. 
 
그러나 보수세력의 공작은 실질적으로 매우 위력적이었지만 그들이 구사했던 마법이 지니고 있는 스스로의 모순 때문에 그 수명을 다할 처지에 놓여있으며, 이는 진보세력이 또 한 번 정치의 힘으로 경제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한 마디로 보수세력은 자신들이 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들을 제대로 실현시킨 것이 하나도 없다. 부자들이 잘 살면 가난한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다는 주장도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으며, 보수세력이 집권할수록 국가안보는 더욱 위태로와지고 있다.
 
특히 도금시대에는 빈부격차가 극심했어도 전체적인 경제의 향상에 따라 중산층, 저소득층의 생활도 따라서 개선되었으므로 대공황 이전에는 그나마 정치적 불만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국가적인 지표가 아무리 좋아져도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생활을 나타내는 지수는 추세적으로도 답보 또는 하락 상태이고,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정당에 투표할까"라는 우리의 오랜 궁금증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제기됐는데, 저자는 위의 논리를 전개하고 각각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그 답은 유권자들이 "이익"이 아닌 "위험하고 보기싫은 것으로부터의 도피"라는 희안한 기준으로 투표하는 것이 관행화됐기 때문이며, 이는 다분히 보수세력의 길고 주도면밀하며 끈질긴 공작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제는 "위험하고 보기싫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의 정도가 현저히 약화됐다. 공산주의는 사라진지 오래이고, 인종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 가당치도 않게 대선의 향방을 좌지우지하기도 했던 동성애 문제가 그러하며, 이라크전의 결과로 이슬람=테러에 대한 공포 역시 미국인들의 치욕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보수세력의 선전선동이 그전처럼 먹혀들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으며, 보수세력이 부활하여 득세한 기간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무능을 입증한 기간이었다. 따라서 크루그먼은 이와 같은 주장을 토대로 이제 진보세력이 집권하여 뉴딜을 부활시키고 완성시킬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미국 경제가 실질적인 공황상태에 빠져든 지금, 크루그먼의 주장은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뉴딜 직전의 상황과 유사하며, 그 자체로 "탐욕의 무한 허용"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 보수주의의 모순이 총합적으로 폭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소
2008년 6월 10일 초판 1쇄
2008년 6월 15일 초판 3쇄
옮긴이 예상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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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책사진 받으려고 알라딘 들어갔더니 이 책이 일시품절이라네. 지금 경제상황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암튼 좋은 일이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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