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사회주의 경제에 대한 실험은 이미 한 차례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록히횽이 올린 글 중의 한 대목입니다.
록히횽의 저 멘트는 우리가 흔히 자연스럽게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바의 본분은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에 대한 것마저 까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렇게 장문텔허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1.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말한적이 없다.
2. 실패한 것은 레닌과 스탈린의 국가사회주의, 생산력주의이다.
3. 논리필연적으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실패한 적도 있을 수 없다.
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글을 쓰기 전에]
저는 맑스로 부터 빵 한조각 얻어 먹은 적이 없으며, 살아온 과정도 불과 수년전까지만 해도 그저 돈 벌어서 내가족 내새끼 배불리 먹이는 것 외에 별관심 없던 소시민이었고, 정치참여라봤자 눈 있고 귀 멀쩡하면 모두 데모하던 그 시절 훈방조치된 경력 정도가 전부인 알바임을 밝힙니다.
즉, NL이니 PD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쁘띠부르주아 알바였으며, 다만 술을 넘 즐기다 만나고 온 저승사자의 "그 따위로 살지 마라"는 한마디 덕에 남 생각도 좀 하게 될 줄 안 개과천선(?) 알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알만한 알바는 다 알고 있지만 자판질을 그만둔 새에 신규 알바가 많이 늘어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저 시키 혹시 맑스 꼬붕 아녀?"하는 오해를 미리 불식시키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만 편하게 말을 까면서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1. 소위 실패한 "사회주의"라는 것.
사회주의라는 말은 그 기원이 불분명한데 지금 야그하려는 것과 관련해서 오늘날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은 '레닌'이 쓴 [국가와 혁명](1917) 을 통해서다. 즉, 늙은 맑스가 [고타강령 비판](1875)에서 완전한 꼬뮌주의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단계로서 제시한 '첫번째 단계의 꼬뮌주의'를 가리켜 (맑스 사후에) 레닌은 그것을 사회주의라고 마음대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 본 알바가 꼬뮌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현재도 혼용되고 있는 소위 현실 사회주의 혹은 현실 공산주의와의 혼란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말 그대로의 꼬뮌주의는 역사적으로 실천된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나마 맑스의 야그와 레닌의 야그가 서로 의미가 사맛디 아니하다.
[고타강령비판]에서 맑스가 말한 첫번째 단계의 꼬뮌주의와 레닌의 사회주의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국가의 지위이다.
즉, 맑스는 국가를 존속시키되 "사회의 하위기관"으로 둔다는 것인데 반해, 레닌의 사회주의는 당의 매개를 통해 국가가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조차도(과도기로나마 국가를 인정한다는 것) 맑스가 만년에 약간 어리버리해지고 나서의 변화인데, 그 이전까지 맑스는 줄기차게 국가의 소멸을 주장했었다.
2. 맑스, 엥겔스, 레닌
엥겔스의 [반뒤링론](1878)은 공산주의자에게는 성서와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책인데, 이 책의 역할은 맑스와 레닌을 이어주는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말은 뒤집어보면 맑스와 레닌이 엥겔스의 [반뒤링론]이라는 다리가 없다면 연결되기가 힘든, 단절된 관계라는 것이다.
레닌주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국가사회주의이다. (국가사회주의는 파시즘의 번역어로도 쓰여지는데 이는 명백한 오역이며, 파시즘은 민족사회주의이다.) 국가사회주의는 당을 매개로 한 국가계획주의이며 이것은 기존의 지배층이 자본에서 당으로 바뀌고 생산수단을 국유화 한다는 것일 뿐 "국가폭력에 의한" "지배의 양식"이라는 점에서는 자본주의와 동일하다.
엥겔스의 [반뒤링론]은 계획주의를 통해서 맑스와 레닌을 연결해 준다.
즉, 맑스의 꼬뮌주의는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연합이어서 국가라는 외재적 계획적 지배기구를 상정할 수 없는 체계이다. 그런데 엥겔스는 당의 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국가를 당에 종속시키는 형식으로 레닌의 국가사회주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레닌은 맑스 사후에 맑시즘의 적자로서 인정되어지고 아시다시피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국가사회주의를 실천하게 되며, 그의 후계자인(꼬뮌주의에 후계자 따윈 없다) 스탈린은 사상최대의 숙청과 집단농장을 통한 노동자 착취 등 최악의 만행을 일삼는다.
3. 맑스적 꼬뮌주의.
맑스의 꼬뮌주의는 뉘앙스의 차이를 보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가지 버전이 있는데 포이에르바흐에게 영향을 받은 1844년까지의 미성숙한 버전, 위에서 이야기한 어리버리 버전, 그리고 1845~1872년 사이에 제일 빠릿빠릿할 때의 버전이 있다.
제일 빠릿한 시기에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 [정치경제학 비판요강] [자본론] [프랑스내전] 등 조낸 장문텔허를 일삼으며 그의 꼬뮌주의를 완성하는데 그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연합, 지역단위 꼬뮌들의 연합, 사적소유의 폐지, 실질적인 개인적 소유의 발전, 토지와 생산수단의 공유화(국유화가 아니다), 국가의 부정(일체의 지배기구 부정) 등이다.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레닌과 스탈린의 국가사회주의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차이의 자연스런 귀결로서 국가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도구화를 통한 자본주의와의 생산력 경쟁에 노동자들을 내몰아서 오히려 그들을 자본주의 보다 더 착취했다는 점이다.
즉, 맑스를 참칭하여 실제로 실험되어진 것은 최악의 노예적 지배에 입각한 국가사회주의였다.
4. 결론.
할 얘기는 많지만 넘 길어져서 이만 대~충 결론 내려야겠다.
위에서 불충분하나마 대충 살펴본 바와 같이 소위 실패한 사회주의와 맑스적 꼬뮌주의와의 거리는 오히려 자본주의와의 거리 보다 멀 수 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 한국의 진보 혹은 좌파의 꼴은 마치 똥 싸고 뒤 안 닦은 엉거주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일부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좌파는 바로 레닌-스탈린주의에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악의 체제인 북한- 얘를 뭐라 불러야 할 지 몰겠다. 군주형 국가민족사회주의?- 에 동조하는 주사파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현재 일각에서 자기반성의 흐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진정한 내면적, 이론적 반성을 통해 새롭게 재탄생하지 않는 한 한국 진보의 발전은 없으리라 본다.
궤네깃또@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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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6 - [정치] - 실패한 사회주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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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사회 운영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Tracked from 마르크스의 눈 삭제블로그 주제를 마르크스주의(맑스주의)로 정하고 관련된 블로그들을 찾아봤다. 아무래도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블로그가 한두개쯤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내가 순진했던 것 같다. 그런 블로그를 아직 찾지 못했다. 진보적 입장에서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명확히 마르크스주의를 방법삼아 사회를 분석하는 블로그는 희소한 듯하다. 하긴 마르크스가 죽은 개 취급 당한 게 수십년도 더 됐으니까. 특히나 한국처럼 87년 이후 운동이 성장하자마자 소련이..
2008/11/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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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2008/09/25 19:45하면서 끄덕거리며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찌질넷이란 곳도 알게되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