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건 사진이건, 뭐건 도대체 올라오는 게 없군효~
글 올라오는 것도 리듬이 있나 봅니다...
그동안 저는 본의 아니게 여행이랍시고 여기저기 사진을 많이 올렸던 것 같은데 사실 제 본업하고는 전혀 관계 없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제가 여행을 무지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하겠지만 저는 그것하고는 사실 거리가 아주 먼 사람입니다.. 저는 뜨끈뜨끈한 온돌방에서 궁뎅이 지져가면서 책이나 읽거나 음악이나 듣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빈둥대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너 어디 나가지말고 한달 집에서만 놀아라 해도 아주 잘 놀 사람입니다..
요즘, 이런저런 바쁜 일도 있고 여차저차 해서 들어오지를 못했는데 자게건, 시토건, 음게건, 북리뷰건 도통 글이 없군효. 죽은 시인의 사회 짝입니다.. 그런 책임감까지 저한테 뭐 있겠냐먄 그래도 하도 안쓰러워 사진 몇장 올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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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하면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특히 그가 미완으로 남겨놓은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 오리지널 이름은 "성가족속죄전성당")은 가우디 말년의 최고의 작품으로서 직접 안보셨어도 대충은 어떤 생김새인지, 형상인지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가우디의 모든 작품들이 그렇지만 이 성당은 기교의 극치입니다. 인간의 장난끼가 최대로 구현된 건물이라는 말이지요. 처음 세워질 때나 지금이나 참으로 논란 많은 건물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야 마치 고딕 양식의 대성당처럼 아주 견고한 건축물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텅 빈, 마치 녹아 흘러내리는 초가 연상되는 그런 건물입니다. 성당 외부의 장식들은 마치 촛농이 뚝뚝 떨어질것처럼 보이고 말이죠!
1882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지금 이 글을 쓰는 2008년 9월28일까지 건축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 100년이 뭡니까? ...물경 130년이 다 되어가는군효. 그런데도 아직 완성이 아닌 미완의 건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동안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도대체 이 성당은 언제나 되야 완성될지...또 한 100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가우디는 한마디로 천재입니다. 아마도 이런 사람을 두고서 천재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우디가 이제까지 설계하고 건축한 주요 건축물만 헤아려 손꼽아 봐도 한 20개는 족히 될 겁니다. 거기에다가 소소한 것 따지면, 그리고 설계만 했다가 실행에 못 옮긴 것까지 따지면 아주 많을 겁니다..
근데 이렇게 말하는 저는 가우디의 천재성이야 인정하고 경하하지만 그가 만든 건축물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가우디가 설계하고 건축한 성당이나 궁전, 공원, 아파트 등은 늘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아니 그로테스크 하다는 말이 오버라면 뭔가 내 몸의 기가 가우디형의 장난의 극치인 결과물들을 받아들이는데 스파크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건 아마도 가우디의 건축기법이 전통에서 한참 벗어나 그의 작품들을 대할 때 어떤 낯선 모습으로, 다시 말해서 친숙하지 않아서 몸이 거부하는 그런 현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우디의 예술성은 바로크성입니다. 여기서 예술사조상의 바로크성을 부연은 안하겠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바로크주의, 또는 바로크성은 인간의 작위(일반적인 용어는 장난), 창의성, 일탈성에 최대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지요~ 르네상스 시대의 정형성이나 고전성, 그리고 균형을 상기하시면 이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실 겁니다.
이 가우디야말로 바로 인간의 작위, 인위성,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한 건축가지요~
성가족성당 보세요.. 마치 찰흙이나 밀가루 반죽으로 자신의 장난끼, 예술성을 원없이 발휘한, 한마디로 지 꼴리는대로 만든 작품입니다. 가우디의 "밀라 아파트"(Casa Mila)나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구엘 공원"(Parque Guelle)을 연상하시면 이해가 갈 겁니다. 가우디는 자신의 건축물에 한번도 직선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적이 없다고 하지요. 건물 외양이건 내부건 모두가 곡선입니다. 게다가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면 어딘가 엑조틱한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그건 가우디가 자신의 건축물에 중국이나 인도, 일본, 또는 페르시아, 또는 아랍 건축물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서일지 모릅니다.(여기서도 한국은 불행하게도 꼽사리를 끼지 못합니다. 혹시나 가우디가 한국의 건축물을 알았더라면...초가집 곡선, 한국의 구릉, 버선발 등등 누가 그런던데.. 한국의 미는 곡선의 미라고..). 게다가 후기로 가면 소위 자연주의 기법을 차용하는데 여기서 자연주의 기법이라는 것은 자연에서 보이는 가장 자연스러운 점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겁니다. 근데 이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가우디 최고의 인위성, 작위성인 거지요..
19세기 중반인 1852년에 태어난 가우디는 1926년 바르셀로나 거리를 걷다가 전차에 치여 죽었습니다. 74살이었지요. 그의 시신은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이 증명서 없는 시신이 가는 공공시체안치소로 보내졌습니다. 다 떨어진 남루한 복장을 한 이 위대한 예술가를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는데 가우디는 참 신비한 사람입니다...도사처럼 다가와요... 젋은 시절 실연한 이후,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살았던 점도 그렇고 게다가 돈도 무지 벌었을 텐데 아주 검소하게 산 점도 그렇고...
가우디를 평생 붙잡은 것은 건축, 자연, 종교였는데 거기에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인 카탈란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첨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이 카탈란 지방은 스페인 안에 있기는 하지만 말도 완전히 틀린 스페인안의 또다른 외국입니다. 이 동네 가면 언제나 아! 난 지금 외국에 왔구나 하는 느낌이 파닥 옵니다. 도로 간판이건, 지하철 지도건 모두 카탈란 말로 쓰여져 있고...
아름다운 항구도시 바르셀로나, 그 도시가 있는 카탈란 지방, 두고두고 생각해도 참으로 대단한 도시, 그리고 지방입니다. 카탈란이 도대체 어떤 지방입니까? 달리, 미로, 가우디를 배출한 지방입니다. 갸우디 역시 카탈란, 그 중심지인 바르셀로나에 자신만이 지닌 열정, 그 천재성, 혁명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그 도시를 자신의 도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예술작품, 건축물을 시연할 수 있는 공간이었지요...그래서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입니다. 바르셀로나 가시면 관광가이드 책이나 팜플렛을 보실텐데 거기에 바르셀로나는 아예 “가우디의 도시” 그렇게 되어 있더군요~
스페인은 전세계에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40개 문화유산중에서 가우디가 만든 7개의 건축물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면 놀랄만한 일이지효.. 바르셀로나,, 아마도 바르셀로나는 가우디 건축물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뿌리는 돈, 그걸로 들어오는 수입이 대단할 겁니다. 한 위대한 예술가가 도시를, 아니 전체지방을 먹여 살리는데 상당힌 기여를 하는 셈이지요~
바르셀로나는 아주 개방적이고 진보적이고 전위적인 도시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예술 또라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또라이들 속에서 제2의 달리가, 미로가, 가우디가 나올지 모릅니다.
추기: 근데 참, 저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전 가우디의 천재성과 위대성은 영원히 존경하겠지만, 그리고 그의 작품들을 보면 매번 탄성을 올리고 경탄은 하겠지만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난 주, 그림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부부가 이 동네 놀러왔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야..난 가우디 별로다~ 했는데 그 친구녀석도 의외로 자기도 똑같은 생각이라고 하더군효~... 살다가 보면 내 생각에 누군가 공감해 주면 그것만큼 기쁜 것이 없습니다.
- 한창 공사중인 "성가족성당"
- 어느 건물 유리창에서 바라본 성당 모습. 사진이 뿌옇다
- 성가족성당의 입구. 가운데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 12유로(한국돈 약2만원)
- 조각물은 우리가 흔히 아는 성인들 모습이 아니다. 얼굴도 문드러져 있고, 해골도 있고 마치 묵시록의 기사들 모습 같기도 하고..
- 성당 두 탑 사이에 걸터앉은 해골 성인. 땅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 조낸 공사중인 성가족성당
<보너스>
유명한 "밀라 아파트"(Casa Mila). 지금도 일부는 사무실로, 그리고 아파트로 여전히사용되고 있다.
포켓@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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