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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신(神)이다

경제 2008/09/30 10:08 by 알밥





이하 별도 표기없는 인용문은 모두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에서 빌어왔음을 밝힌다. 그리고 기본흐름은 이종영의 [욕망에서 연대성으로]에 기댔다.)





독일 사회학의 거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그의 명저 [돈의 철학]에서 화폐를 신에다 비유했지만, 현대자본주의세계에서 화폐는 비유만으로서가 아닌 실재로서의 신이 곧 자신임을 드러내고 있다.











화폐의 사전적 의미는 "수단"이다. 그러나 오늘날 "최종 목적"으로 고양된 화폐의 지위는 결코 수단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는다. 

아다시피 화폐의 기능은 교환수단, 가치저장수단, 지급수단, 가치표현의 척도로서의 수단이라고 흔히 이야기 된다. 즉, 화폐는 혼자서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오로지 타재화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치를 가지는 수단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화폐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를 교환수단으로서 획득하였다"

화폐는 원래 교환할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면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는다. 화폐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다른 가치있는 물건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환할 물건이 무궁무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할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란 없다. 상품형식으로서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는 드디어 교환이라는 나와바리를 벗어나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구미호

"가치를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화폐의 역할이 증가할수록 화폐가 물질적 실체에 결합되어 있을 필요성은 더욱 사라지게 된다."

당연하다. 왜냐하면 사물의 고정성은 화폐에 투사되고 집약되어 있는 가치들을 화폐처럼 다양하게 변신하여 실체화 시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화폐는 이를테면 현대적 둔갑술이라는 가치를 가진, 자본주의의 구미호다.  

"다른 모든 사물들은 일정한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반면에 화폐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내용을 갖게 된다. 말하자면 화폐는 실체화된 가치이며, 사물들 자체를 배제한 사물들의 가치이다."

이 말은 화폐 그 자체가 교환수단으로서의 수단성을 벗어나서 다른 모든 사물의 가치를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는 "실체화된 가치"라는 것이며, "사물들 자체를 배제"하고 자립화하여 모든 사물들의 가치를 한몸에 수렴한, "모든 가치의 실체화된 표상"으로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모든 가치의 실체화된 표상이라는 것은 화폐가 이미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사물의 가치를 표상한 존재를 "목적"이라는 단어 외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직은 미약한가? 그러면 조금 더 살펴보자.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것 + 선택의 자유

"개개의 화폐량의 가치는 그것과 교환되는 특정한 대상의 가치를 능가한다. 왜냐하면 화폐는 그 대상 대신에 무한히 큰 범위에서 임의의 다른 대상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일정한 화폐액의 가치는 그것과 등가의 관계에 있는 각 대상의 가치에다 수많은 다른 대상에 대한 선택자유의 가치를 더한 것이 될 것이다."

선택자유의 가치.
바로 이것이다. 화폐가 수단의 지위에서 벗어나서 목적화 될 수 있는 이유가.
선택의 자유를 가지게 됨으로써 화폐를 가지고 한가지 목적 뿐 아니라 그 화폐와 교환 가능한 모든 사물들을 포함함으로써 목적의 총체와 관련을 맺게 되고 또한 아직 교환되기 전의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변용 가능성은 무한해 진다.

더군다나 어떤 물건이든 시간적,공간적 제한성을 가지지만, 화폐는 그런 제한을 벗어나서 그 화폐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것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니까 화폐의 가치란 동일한 화폐량으로 표시되는 것 중 최고의 것에 + 선택자유의 가치를 합친 것이 된다.


부자라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아?

"이 자유 때문에 부자는 자기가 실제 행하는 것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 의해서도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는 이처럼 부자가 화폐로서 실제할 수 있는 일보다도, 실제 얻을 수 있는 이득 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고, 그의 주변에는 그 가능성을 자신의 가능성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부자는 그리하여 자신이 구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은 불로소득을 누리는데, 상인은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에 대해 더욱 신빙성 있는 상품을 더욱 저렴하게 판매하고, 그의 부에 의해 이익을 얻건 못얻건 공손하게 대하며, 고급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사소한 우대가 주어지고, 가난한 사람의 기준에 맞춰진 저렴한 생필품을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비율의 화폐로 구매함으로써 나머지 소득부분에 있어서는 선택의 자유를 잉여로 남겨둘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급료없는 관리는 오직 부자만이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그에 덧붙여 애국적 희생이라는 영예까지 누릴 수 있으며, 사물의 화폐가치에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으므로 대상의 획득과 향유에 화폐를 희생시킨다고 하는 문제로 심적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화폐를 경멸할 수 있는 부가가치까지 누리며 그로 인해 부자들은 더욱 존경의 대상이 된다. (부자의 장점을 일일이 나열하다간 숨 넘어 감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화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각종의 존경과 우대까지 합쳐져서 선택의 자유는 자연스럽게 지배 권력의 외양을 띠게 된다. 하지만 화폐는 권력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최종목적

"최종 목적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에 더욱 관심이 기울여지고, 그들은 자신들의 힘을 그 조건들에 쏟게된다. 그래서 실제의 목표들은 완전히 의식으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다. 화폐만큼 근본적으로 심리적인 절대적 가치- 실천적 의식을 완전히 몰두시키는 최종목적 - 에까지 도달한 경우는 아직 한번도 없다."

사람들이 애초에 달성하려던 목적(이를테면 행복)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의 화폐획득에 몰두하게 됨으로써, 어느듯 목적은 의식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화폐만이 최종목적인 듯이 마음 속을 꽉 채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최종목적이 된 화폐는 드디어 신의 지위를 넘보기 시작한다.


오! 신이시여!

"수단에 불과한 가치가 그러한 목적을 대신하게 되고, 목적의 외양을 띠는데...화폐는 실제로 절대적인 수단이요 무수한 목적계열의 통일점이며, 그것은 신에 대한 관념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짐멜은 신성모독을 범하지 않으려 주저하면서 신에 대한 관념을 이야기 한다. 신이란 "세계내의 모든 다양성과 모순이 그 안에서 통일되며, 모든 '대립되는 것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로서 그 안에서는 존재의 모든 소외와 불화가 통일과 화해를 찾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폐도 또한 화폐가 모든 가치와 등가물이 됨으로써, 그것은 모든 다양한 대상들을 넘어서는 고도의 추상성을 가지게 되고, 그것은 극단적으로 대립되고 대단히 이질적이며, 대단히 멀리 떨어진 사물들이 공통점을 발견하고 상호 접촉하는 중심점이 된다.

"사실상 화폐는 신과 같이 개별적인 것을 초월하는 고양된 지위를 나타내고, 그 지위의 전능성에게 신뢰를 부여하여 준다. 이 신뢰는 지고의 원칙(신)에 대한 신뢰와 유사한 것이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보다 저급한 것을 언제라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고, 또한 언제라도 자신을 개별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짐멜은 신에 대한 신뢰와 "유사"하다고 표현했지만, 무수한 목적의 통일점이자 다양성과 모순의 통일점이며, 대립되는 것들의 일치점으로서 존재의 통일과 화해를 찾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것을 제공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모든 개별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 그것이 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역겨운 창세기

이처럼 신으로 격상된 화폐는 그 전능성을 가지고 "자기의 형상대로" 새로운 천지를 창조한다.
짐멜은 6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신이 어떻게 사회를 바꾸는 지 느긋하게 분석한다. 하지만 스크롤의 압박에 시달릴 알바들은 짐멜의 그런 느긋함을 즐길 여유가 없기에 한가지만 인용하고 글을 맺어야겠다.

"돈을 벌기 위해서 주어지는 기회를 닥치는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은 선험적인 규정성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분명히 그러한 생존수단은 '약삭빠름'(개인적 이해에만 절대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라 불리는 비범한 지력이 있어야만 성공적일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그래야만 가능하게 된다...'동료 인간들을 속여서 먹고 사는 사람'..."

선험적 규정성이란 것은 물론 경험과는 무관하게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도덕성을 의미한다. 신적 존재인 돈을 손에 쥔다는 것은 신적인 전능성을 그의 손에 쥐는 것이며, 그 전능성은 동료를 속여서 먹고 사는 약삭빠름(이건 곧 사기를 의미한다)을 지녀야만 성공할 수 있으니, 선험적 도덕성이 문제겠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충동적으로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속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 아도르노.[한줌의 도덕].

이처럼 최종목적인 돈을 벌기 위해서는 화폐 이외의 모든 것들은 목적에 종속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만 지닐 뿐이고,  일상화된 타인의 수단화는 신뢰의 파괴를 통해 공동체라는 말은 앙상한 겉치레로서만 존재한다 (애초부터 "자본주의 공동체"란 표현은 모순적 허구였을 지도 모른다). 누구도 자신을 수단화하는 타인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용? 그건 이미 돈이 된지 오래됐다.


참, 한가지 잊어버릴 뻔 했다. 
이 글을 읽을 알바들의 질문. "그래서 넌 돈이 싫어?" 

"안휘.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살면서 어떻게  자본주의의 신을 거역할 수 있겠어효. 그저 이제나 저제나 임하실까, 그 신을 영접하고 은혜받기 위해서 오늘도 조낸 뺑이치고 있삼. ㅜ.ㅜ;;"
 
 
(글고 이 글을 북리뷰가 아닌 시사게시판에 올린 이유는 나름대로 논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낸 길고 지루한 책 읽느라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리...떫삼?)
눼... 떫삼..!!
하여... 쓴 알바의 의도를 존중하여, <책>이 아닌 <경제>카테고리에 이 글을 올립니다. 편집자 알바


궤네깃또@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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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돈은 신(神)이다

    Tracked from 옐로골드 의 상념노트  삭제

    &#65279; ㄹㄹ

    2011/06/18 04:08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네오경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게 필요한 책인 것 같습니다. 화폐교환경제를 대신할 네오경제를 궁리하는 데에 말이죠... 그건 그렇고, 요즘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2006년에 만나뵜을 때는 수술 직후였던 것 같은데요....

    2010/03/26 08:26
  2. Favicon of http://vlog.naver.com/sagered 옐로골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지금 시대는 돈이 신으로 숭배되는 시대겠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괜찮은 글이니 링크 걸께요.^^

    2011/06/1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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