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아다시피 화폐의 기능은 교환수단, 가치저장수단, 지급수단, 가치표현의 척도로서의 수단이라고 흔히 이야기 된다. 즉, 화폐는 혼자서는 아무런 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오로지 타재화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치를 가지는 수단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화폐는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를 교환수단으로서 획득하였다"
화폐는 원래 교환할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면 아무런 가치를 갖지 않는다. 화폐가 가치를 가지는 것은 다른 가치있는 물건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환할 물건이 무궁무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환할 물건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란 없다. 상품형식으로서 존재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는 드디어 교환이라는 나와바리를 벗어나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구미호
당연하다. 왜냐하면 사물의 고정성은 화폐에 투사되고 집약되어 있는 가치들을 화폐처럼 다양하게 변신하여 실체화 시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화폐는 이를테면 현대적 둔갑술이라는 가치를 가진, 자본주의의 구미호다.
"다른 모든 사물들은 일정한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반면에 화폐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내용을 갖게 된다. 말하자면 화폐는 실체화된 가치이며, 사물들 자체를 배제한 사물들의 가치이다."
이 말은 화폐 그 자체가 교환수단으로서의 수단성을 벗어나서 다른 모든 사물의 가치를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는 "실체화된 가치"라는 것이며, "사물들 자체를 배제"하고 자립화하여 모든 사물들의 가치를 한몸에 수렴한, "모든 가치의 실체화된 표상"으로 상승했음을 의미한다.
모든 가치의 실체화된 표상이라는 것은 화폐가 이미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사물의 가치를 표상한 존재를 "목적"이라는 단어 외에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아직은 미약한가? 그러면 조금 더 살펴보자.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것 + 선택의 자유
선택자유의 가치.
바로 이것이다. 화폐가 수단의 지위에서 벗어나서 목적화 될 수 있는 이유가.
선택의 자유를 가지게 됨으로써 화폐를 가지고 한가지 목적 뿐 아니라 그 화폐와 교환 가능한 모든 사물들을 포함함으로써 목적의 총체와 관련을 맺게 되고 또한 아직 교환되기 전의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변용 가능성은 무한해 진다.
더군다나 어떤 물건이든 시간적,공간적 제한성을 가지지만, 화폐는 그런 제한을 벗어나서 그 화폐량으로 확보할 수 있는 최고의 것과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그러니까 화폐의 가치란 동일한 화폐량으로 표시되는 것 중 최고의 것에 + 선택자유의 가치를 합친 것이 된다.
부자라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아?
선택의 자유는 이처럼 부자가 화폐로서 실제할 수 있는 일보다도, 실제 얻을 수 있는 이득 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고, 그의 주변에는 그 가능성을 자신의 가능성으로 바꾸기 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부자는 그리하여 자신이 구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욱 많은 불로소득을 누리는데, 상인은 가난한 사람보다는
부자에 대해 더욱 신빙성 있는 상품을 더욱 저렴하게 판매하고, 그의 부에 의해 이익을 얻건 못얻건 공손하게 대하며, 고급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사소한 우대가 주어지고, 가난한 사람의 기준에 맞춰진 저렴한 생필품을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비율의 화폐로 구매함으로써 나머지 소득부분에 있어서는 선택의 자유를 잉여로 남겨둘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급료없는 관리는 오직 부자만이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그에 덧붙여 애국적 희생이라는 영예까지 누릴 수 있으며, 사물의 화폐가치에 전혀 신경쓸 필요가 없으므로 대상의 획득과 향유에 화폐를 희생시킨다고 하는 문제로 심적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되고, 오히려 화폐를 경멸할 수 있는 부가가치까지 누리며 그로 인해 부자들은 더욱 존경의 대상이 된다. (부자의 장점을 일일이 나열하다간 숨 넘어 감을 알 수 있다.)
자신의 화폐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각종의 존경과 우대까지 합쳐져서 선택의 자유는 자연스럽게 지배 권력의 외양을 띠게 된다. 하지만 화폐는 권력 정도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최종목적
사람들이 애초에 달성하려던 목적(이를테면 행복)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의 화폐획득에 몰두하게 됨으로써, 어느듯 목적은 의식에서 사라지고 오로지 화폐만이 최종목적인 듯이 마음 속을 꽉 채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최종목적이 된 화폐는 드디어 신의 지위를 넘보기 시작한다.
오! 신이시여!
그리고 짐멜은 신성모독을 범하지 않으려 주저하면서 신에 대한 관념을 이야기 한다. 신이란 "세계내의 모든 다양성과 모순이 그 안에서 통일되며, 모든 '대립되는 것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로서 그 안에서는 존재의 모든 소외와 불화가 통일과 화해를 찾게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폐도 또한 화폐가 모든 가치와 등가물이 됨으로써, 그것은 모든 다양한 대상들을 넘어서는 고도의 추상성을 가지게 되고, 그것은 극단적으로 대립되고 대단히 이질적이며, 대단히 멀리 떨어진 사물들이 공통점을 발견하고 상호 접촉하는 중심점이 된다.
"사실상 화폐는 신과 같이 개별적인 것을 초월하는 고양된 지위를 나타내고, 그 지위의 전능성에게 신뢰를 부여하여 준다. 이 신뢰는 지고의 원칙(신)에 대한 신뢰와 유사한 것이다. 그것은 개별적이고 보다 저급한 것을 언제라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고, 또한 언제라도 자신을 개별적인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짐멜은 신에 대한 신뢰와 "유사"하다고 표현했지만, 무수한 목적의 통일점이자 다양성과 모순의 통일점이며, 대립되는 것들의 일치점으로서 존재의 통일과 화해를 찾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것을 제공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모든 개별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 그것이 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역겨운 창세기
짐멜은 6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신이 어떻게 사회를 바꾸는 지 느긋하게 분석한다. 하지만 스크롤의 압박에 시달릴 알바들은 짐멜의 그런 느긋함을 즐길 여유가 없기에 한가지만 인용하고 글을 맺어야겠다.
"돈을 벌기 위해서 주어지는 기회를 닥치는대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내용은 선험적인 규정성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다...분명히 그러한 생존수단은 '약삭빠름'(개인적 이해에만 절대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라 불리는 비범한 지력이 있어야만 성공적일 수 있으며, 심지어는 그래야만 가능하게 된다...'동료 인간들을 속여서 먹고 사는 사람'..."
선험적 규정성이란 것은 물론 경험과는 무관하게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도덕성을 의미한다. 신적 존재인 돈을 손에 쥔다는 것은 신적인 전능성을 그의 손에 쥐는 것이며, 그 전능성은 동료를 속여서 먹고 사는 약삭빠름(이건 곧 사기를 의미한다)을 지녀야만 성공할 수 있으니, 선험적 도덕성이 문제겠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충동적으로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속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 아도르노.[한줌의 도덕].
이처럼 최종목적인 돈을 벌기 위해서는 화폐 이외의 모든 것들은 목적에 종속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만 지닐 뿐이고, 일상화된 타인의 수단화는 신뢰의 파괴를 통해 공동체라는 말은 앙상한 겉치레로서만 존재한다 (애초부터 "자본주의 공동체"란 표현은 모순적 허구였을 지도 모른다). 누구도 자신을 수단화하는 타인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용? 그건 이미 돈이 된지 오래됐다.
참, 한가지 잊어버릴 뻔 했다.
이 글을 읽을 알바들의 질문. "그래서 넌 돈이 싫어?"
(글고 이 글을 북리뷰가 아닌 시사게시판에 올린 이유는 나름대로 논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낸 길고 지루한 책 읽느라 고생한 것이 아까워서리...떫삼?)
눼... 떫삼..!!
하여... 쓴 알바의 의도를 존중하여, <책>이 아닌 <경제>카테고리에 이 글을 올립니다. 편집자 알바
하여... 쓴 알바의 의도를 존중하여, <책>이 아닌 <경제>카테고리에 이 글을 올립니다. 편집자 알바
궤네깃또@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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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필요한 책인 것 같습니다. 화폐교환경제를 대신할 네오경제를 궁리하는 데에 말이죠... 그건 그렇고, 요즘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2006년에 만나뵜을 때는 수술 직후였던 것 같은데요....
2010/03/26 08:26역시 지금 시대는 돈이 신으로 숭배되는 시대겠죠.
2011/06/18 04:31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괜찮은 글이니 링크 걸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