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게시판이 썰렁해서 본 알바가 읽지도 않은 책을 소개합니다. ( 원본의 영문 번역본 읽고 있는 중 )
제목부터가 좀 도발적입니다. 흔히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로 번역하는 제목을 색다르게 "찌질넷체" 비슷하게 구어체로 표현했습니다. 주인공의 이름도 "짜라두짜"로 음역했고요. 오마이 뉴스의 서평에 그 이유가 설명됩니다.
번역자에 따르면 '차라투스트라'의 독일어나 영어 발음은 원래 네 음절로서 우리 귀에는 '짜라두짜'로 들린다고 한다. 그래야 음율을 맞추기도 좋다. 그래서 '짜라두짜'라는 다소 도발적인 이름을 사용했다. 왜냐하면 <짜라두짜>는 원래 아포리즘과 우화, 이미지로 가득 찬, 매우 리드미컬한 시(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자의 서문
서평에는 어떻게 보면 격식 파괴로 비칠 수도 있는 문체 선택의 이유로 저도 공감하는 니체의 "템포론"을 인용하고 있군요.
"번역할 때 제일 옮기기 힘든 부분은 문체(style)의 템포이다. 문체의 템포는 그 민족의 성격에서, 좀 더 생리학적으로 말하자면, 그 민족의 '신진대사'의 템포에서 나온다. 정직하게 한답시고 공을 들인 번역이지만 의미와 단어에서 위험한 부분을 가로질러 뛰어넘는 원문의 용감하고도 즐거운 템포 자체를 옮기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문을 속악(俗惡)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오역이 되고만 경우가 종종 있다." - <선과 악을 넘어서> 28장.
▲번역에 사용된 문체의 예
웹 서핑하다가 이 책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호기심에서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국어 번역본을 알라딘에서 뒤져보다가 발견하게 된 "오역의 문제"를 짚은 댓글들입니다. ( 댓글 저자의 블로그 )
일정 부분 공감이 되는 지적들이더군요. 예를 들어
Lange schlief Zarathustra, und nicht nur die Morgenröthe gieng über sein Antlitz, sondern auch der Vormittag. Endlich aber that sein Auge sich auf: verwundert sah Zarathustra in den Wald und die Stille, verwundert sah er in sich hinein. Dann erhob er sich schnell, wie ein Seefahrer, der mit Einem Male Land sieht, und jauchzte: denn er sah eine neue Wahrheit.오래도록 차라투스트라는 잠을 잤다. 여명도 그의 얼굴 위로 지나가고, 오전도 지나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의 눈이 열렸다: 경이롭게, 차라투스트라는 숲속을 보았고 정적(靜寂)을 보았다. 경이롭게, 자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벌떡 일어났다, 번뜩 뭍을 본 뱃사람처럼, 탄성을 질렀다: 그는 새로운 진리를 보았던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서설> 9절에서
...
서두에 인용한 니체의 글로 되돌아가자. 독일어 초학자들은 인용문의 독일어가 니체 당시의 표기법에 따른 것임을 유념하기 바란다.
Lange schlief Zarathustra, und nicht nur die Morgenröthe gieng über sein Antlitz, sondern auch der Vormittag. Endlich aber that sein Auge sich auf: verwundert sah Zarathustra in den Wald und die Stille, verwundert sah er in sich hinein. Dann erhob er sich schnell, wie ein Seefahrer, der mit Einem Male Land sieht, und jauchzte: denn er sah eine neue Wahrheit.
“진리를 보았다”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다. 이것을 “진리를 알았다”, “진리를 깨달았다”로 옮기는 것은, 분명하게 말해두지만, 오역이다.
그리고 “sah … in den Wald und die Stille”는 “숲속과 고요 속을 보았다”, 혹은 “숲속과 고요를 보았다”로 옮겨야 한다. 흔한 생각으로는, “숲과, 그 숲의 고요를 보았다”로 읽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역자들이 “숲과 그 고요를 보았다”는 식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숲과 고요”와 “숲과 그 고요”는 다르다. 이것이 왜 다른지 모르는 이들에게 설명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그냥 원문대로 “숲과 고요”라고 옮기면 된다. 왜 한결같이 약속이나 듯 원문과 다르게 옮기는가!
너무나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차이를 모르는 이들에겐 설명하기 어려운 대목은 이것만이 아니다.
Ein Licht gieng mir auf.
하나의 빛이 내게 트였다.
이것은 툭 트여 사방이 환한 상태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는 정오다! 그저 숲속에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이 비치는 장면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을 “한 줄기 빛이 비쳤다”는 식으로 번역하면 안 된다. 이렇게 단순한 문장에 이렇게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인용문의 “that sein Auge sich auf”를 “그는 눈을 떴다”는 식으로 번역할 수는 없다. 이것은 당연히 “그의 눈이 열렸다”나 “그의 눈이 뜨였다”로 옮겨야 한다. 결국, 하나의 차이가 무수한 차이를 만든다.
이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존번역들이 위 인용문을 어떻게 번역했는가 비교해 보자(1):
문수 짜라투스트라는 오랫동안 잤다. 아침놀만이 아니라 오전의 햇살도 그의 얼굴 위로 지나갔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짜라투스트라는 의아한 눈으로 숲속과 그 고요를 바라보았고 의아한 눈으로 자기 내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나서 그는 갑자기 육지를 발견한 선원처럼 벌떡 일어나 환성을 질렀다. 그는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승자 오랫동안 짜라투스트라는 잤고, 아침놀이 그의 얼굴 위로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놀라서 짜라투스트라는 숲속과 숲속의 정적을 바라보았고, 놀라서 그는 자기 자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서 그는, 문득 육지를 본 뱃사람처럼 급히 일어나며 환성을 올렸다. 새로운 진실을 봤기 때문이었다.동호 차라투스트라는 오랫동안 잤다. 아침놀뿐만 아니라 오전 한나절의 햇살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놀란 듯이 숲과 그 적막을 들여다보았다. 놀란 듯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갑자기 뭍을 발견한 뱃사람이라도 되는 양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환호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희창 차라투스트라는 오랫동안 잤다. 아침놀뿐만 아니라 오전 한나절의 햇살도 그의 얼굴 위로 지나갔다.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차라투스트라는 놀란 눈길로 숲과 그 고요함을 바라보았고 놀란 눈길로 자기 내면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뭍을 발견한 선원처럼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한 가지 더 언급할 것이 있다. “sondern auch der Vormittag”(오전도 지나갔다)의 번역 문제이다. 승자는 부주의로 누락했고, 나머지는 한결같이 “오전의 햇살”, “오전 한나절의 햇살”이 지나갔다고 번역했다. 제발 그리 하지 마시라. 그냥 “오전”이 지나간 것이다. 왜 원문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군살을 덧붙이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로서는 너무 높은 문제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를 자신들의 정신적 수준에 맞게 기어코 끌어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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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서지사항은 다음과 같다. 이 서지 표기는 이후의 글에서도 유효하게 쓰일 것이다:
문수 황문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문예출판사, 1975)
승자 최승자,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청하, 1984)
동호 정동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책세상, 2000)
희창 장희창,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
제가 소장하고 있는 W. Kaufmann 의 문제의 단락에 대한 영문 번역 (1954년) 은 이렇더군요.
For a long time Zarathustra slept, and not only dawn passed over his face but the morning too. At last, however, his eyes opened: amazed, Zarathustra looked into the woods and the silence; amazed, he looked into himself. Then he rose quickly, like a seafarer who suddenly sees land, and jubilated, for he saw a new truth.
역시 위에서 지적된 오역의 문제들을 훌륭히 뛰어넘은 정확한 번역입니다. 물론 영어와 독일어가 같은 Germanic 어군에 속한다는 번역상의 이점이 있긴 하지만요.
언급된 번역들중 정희창씨의 2004년도 번역이 가장 최근 번역인데 앞선 번역들을 그대로 참고했는지 아니면 이 번역본들이 한결같이 일본 번역본을 참고했는지 (이건 근거없는 순전한 추정입니다) 모르겠지만 문제로 지적된 부분들이 30년전의 번역과 비교해 바뀐게 없네요.
그런데 누가 댓글로 "백석현"씨의 번역본이 새로 나왔음을 지적하더군요. 결국 알라딘의 백석현씨 번역본 페이지까지 이끌리게 되었는데 유감스럽게 위의 오역례에 이용된 단란은 '미리보기'에 없어서 어떻게 번역이 이루어졌는지 확인을 못했습니다만 (하지만 역자의 서문 전체를 볼 수는 있습니다) 오역례 (4) 에 지적되는 단락,
Ich liebe Den, dessen Seele übervoll ist, so dass er sich selber vergisst, und alle Dinge in ihm sind: so werden alle Dinge sein Untergang.
사랑하노라, 영혼이 차고넘치는 자를, 그리하여 제 자신을 망각하는 자, 제 안에 만물이 있는 자를: 그리하여 만물은 그의 하강이 되리라. (4절)
의 "Untergang" 은 <내려가기> 라고 적확하게 - 몰락이나 멸망 대신에 - 번역되어 있는것 같더군요. (확언할 수 없는게 왜냐하면 역시 미리보기에 안 나오니까요. 하지만 1절 마지막 문장의 'Untergehen' 의 역어인 '내려가기'를 꺾쇠안에 강조한 것으로 보아 나중에 등장할 'Untergang' 역시 적확하게 번역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담으로 'Untergang' 은 히틀러의 자살 직전 벙커에서의 마지막 날들을 다룬 영화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독일어를 안 배워서 이런 것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조만간 구입해서 원문의 템포와 리듬감을 재현하며 니체의 원래의 의도를 살리려고 한 나름대로의 백석현씨의 새로운 문체 시도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직접 읽고 확인해보고 싶네요.
오마이 서평에 의하면 "백석현"이 필명이라는데 혹시 누군지 아시는 알바?
(어쩐지 무알밥보수의 알라딘 알바가 된듯한 느낌~)
이드의괴물@찌질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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