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글리츠는 그의 책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에서 IMF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구제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오로지 월스트리트의 자본가에게만 이익이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세계 경제의 측면에서 보나 구제 대상국의 입장에서 보나 전혀 이익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이해 불가능한 정책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바람직한 발전모델로 경애해 마지 않았던 동아시아국가들이 IMF 구제금융을 빌미로 이전의 성과를 이룩하게 한 활력과 목표의식을 상실하게 했다고 개탄하고 있다. 또한 그 이후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지급불능 선언, 즉 모라토리움 선언(우리말로 "배째"선언)을 강력하게 지지하면서, 앞으로도 그런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아르헨티나식으로 대응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IMF의 구제금융은 한 국가가 월스트리트 자본가에게 빌린 돈을 갚으라고 빌려주는 것인 바, 결국 해당 국가에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을 것을 가지고 쓸데 없이 그 국가의 자생적인 경제체제만 파괴시킨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국가가 외환으로 비롯되는 금융위기가 발생한다고 해도, 그거 안 갚겠다고 버티면 그 나라에 돈 빌려준 미국 은행만 좀 고생하면 될 것을 왜 괜히 애꿎게 어느 나라의 모든 국민이 그런 쌩고생을 해야하는 것이며, 대환을 해주면 해줬지 왜 미국 자본가의 이익을 계속 확대시키는 시스템을 강요하느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IMF 체제를 전후하여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전인지 후인지, 당선 전인지 후인지 잘 모르겠지만) IMF와의 재협상을 주장하다가 호되게 얻어터지고 결국 IMF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 주었다.
금융에 대해서는 나와 관련된 주택대출이나 소기업대출에 대한 것 말고는 전혀 지식이 없는 나의 능력으로는 판단이 전혀 불가능하지만, 왠지 그 뒤로 IMF가 요구한 조건을 있는 그대로 다 실천한 금융권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시켜왔다는 것과 어리버리한 것들은 다 외국자본으로 넘어갔다는 것 말고는, 그게 나같이 무쉭한 알바색휘들한테 어떤 형태의 이익과 가능성을 부여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가 닥치게 된 것이 미국 부동산대출 때문에 우리나라의 금융이 휘청거리게 됐고, 그 여파로 실물경제도 위축 일로를 걷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면 누구를 탓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충격이 유독 우리나라한테만 도드라지게 나타나는 것이라면 이것은 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대목에서 리만 브라더스의 실책을 주장하는 측이 대세이지만, 그 의견에 대한 긍부정과는 별개로 미전향 노빠로서 혹시 여기에 노통의 실책, 하지 말았어야 될 것을 했다거나, 했어야 하는데 안했거나 못했던 것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키코사태는 현재 위기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사례이지만, 국제금융의 아사리판에 대해 우리나라 금융의 대응능력과 인식수준이 얼마나 저열하고 무능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사례다. 키코사태의 핵심은 우리나라의 금융계나 그 고객으로서의 기업이 외국 자본이 만들어내고 있는 각종 엽기적인 금융상품에 대해 이해하거나 대응할 능력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영업사원이 우리나라에 와서 활개를 치면서 온갖 상품을 내키는 대로 팔아치울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유독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이유가 외화대출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대목에 대해 전현 정부는 순수 대출이 아닌 외국계 금융기관의 본사 차입 비중이 높은 것이므로 10년 전과는 다르다는 말로 해명해 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외국은행에서 빌리거나 외국 본사 돈을 땡겨오거나 결국 그게 그거라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보롯이 10년 전 IMF의 요구에 따라 재편되고 성장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것이 거의 같은 이유로 똑같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외화대출 때문에 생긴 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외국자본에 더욱 좌지우지될 수 밖에 체제를 심어놓은 것 밖에는 안되는 것이다.
핫도그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해 햄버거를 쌔리 먹인 꼴이다. 그것도 이제 겨우 기초체력을 회복했다고 흐뭇해하고 있는 심약한 어린이에게 말이다.
스티글리츠의 주장이 얼마나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크루그먼의 예와 마찬가지로 지금 세계경제의 위기는 그가 우려했던 시나리오 대로 가고 있다. 그는 월가의 무한 탐욕이 국제경제 체제를 왜곡시키고 있으며 그것의 결과는 결국 공멸의 길로 이를 것임을 경고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알면서 어쩔 수 없이 IMF의 요구를 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면, 김대통령이 IMF의 부채를 모두 상환한 이후에 취임한 노대통령은 IMF의 요구에 의해 구축된 신금융체제의 문제를 파악하고, 필요하다면 수정하고 보완하고자 하는 작업을 벌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궁금하지만, 나의 피상적인 느낌으로는 아무래도 노대통령은 IMF에 의해 구축된 신금융체제를 더욱 심화 발전시키는데 주력해 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노통 퇴임 직전 MBC에서 청와대 다큐를 2부작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노통이 그의 서재를 보여주면서 그의 재임 당시 독서편력을 설명한 뒤에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책을 들어보이며 이렇게 얘기했었다.
"이게 내가 봐야되는데 아직 제대로 못 보고 있는 책이예요. 요즘 시끄러운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관한 책인데, 그 문제가 어떤 양상으로 번져갈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는 상황이예요. 그래서 거기에 대한 생각을 해야되는데... 날짜 받아놓으니까 이제 뭐 하기 싫은 거지. ㅎㅎㅎ"
그가 말한 대로 정말 아무도 몰랐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심려를 할 만한 정도라면 금융과 관련된 국제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이 10년 전과는 달리 거기에 충분히 대응하고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살펴볼 수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즉, 우리나라의 금융체제는 10년 전과 유사한 사태가 발생하면 역시 유사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고 어쩌면 같은 사태에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지금의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고 할 때에,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좀 더 튼튼하게 이 사태를 견딜 수 있었다면, 그 공을 지금의 정부가 몽땅 독식한다고 해도 나는 노빠로서 매우 흐뭇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위기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고, 그것도 다른 외국에 비해 좀더 유별나게 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책임을 몽땅 노대통령에게 다 뒤집어 씌운다고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코코@찌질넷
한RSS를 이용해서 보다 편리하게 알밥로그를 구독하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