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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 나희덕



우리 집에 놀러와. 목련 그늘이 좋아.

꽃지기 전에 놀러와.

봄날 나지막한 소리로 전화하던 그에게

나는 끝내 놀러가지 못했다.


해 저문 겨울날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는 못 들은 척 나오지 않고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짐짓 큰소리까지 치면서 문을 두르리면

조등弔燈 하나

꽃이 질 듯 꽃이 질 듯

흔들리고, 그 불빛 아래서

너무 늦게 놀러온 이들끼리 술잘을 기울이겠지.

밤새 목련 지는 소리 듣고 있겠지.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다.

그가 너무 일찍 피워올린 목련 그늘 아래로.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말을 옮겨 본다.

 "그가 나를 부른 것은 봄날이었으나 내가 그를 찾은 것은 겨울날이었다.

그 시간 사이에 그의 죽음이 있다.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으니 목련이 피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쩌자고 때 이른 목련을 요절처럼 피워놓고 이리 묵묵부답인가."


폭이 좁은 비단을 접어 본 적이 있는가.

접으면 안으로 들어가는 면과 밖으로 나오는 면이 생기게 마련.

밖에서 보면 비단인데 그 밖을 받쳐주는 안을 펼쳐 보면 다른 세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는가.

안으로 접힌 저 부분에서 자잘한 슬픔이 생겨나기도 하고

자잘한 슬픔이 시간이라는 비료를 받아서 풍랑이 되기도 하는 것.

그 풍랑을 숨기고 비단은 겉으로는 그냥 결고운 비단인 것처럼

뙤약볕 아래서 내 존재가 휘발할 것처럼 위태로울 때의 풍랑이나

어느날 갑자기 뙤약볕이 중증의 환자처럼 시름시름 사그라 들어

깊숙한 내 안에 숨어 있는 눈물들의 기폭제가 되어버릴 때의 풍랑.

그 풍랑을 준비하기 위해 늘 자잘한 슬픔이 찰랑거리는 물처럼 담긴 나의 내부.

그런 것들을 숨긴 나는 겉으로는 그냥 멀쩡하고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나희덕 저 여자.

죽은 사람을 찾아가서는 너무 늦게 그에게 놀러간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녀.

너무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말투에

나는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이봐 어서 나와 목련이 피려면 아직 멀었잖아." 그렇게 얘길하는

순간 평범한 나희덕의 내부에서 고막이 찢어질듯한 천둥 소리가 울려 나올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천둥 소리가 아주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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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눈팅삼매님께서 2007년 9월 7일에 본인의 블로그에 발표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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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긍정의힘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매뉨 황토방에 남기신 '엄마의유산' 하고 '화양연화'도 참 좋은데..
    아깝당~~!

    2007/11/1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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