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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가면 대도시 대형마트에서나 재래시장 좌판에서나 시골 구멍가게에서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라면이 있다.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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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러시아에 갔을 때 시장 좌판에 깔려있는 이 라면을 보고 북한에서 만든 라면인 줄 알았다. 촌스러운 서체의 한글로 제품이름이 써있는데다가 북한 여성을 연상케 하는 통통한 얼굴의 아줌마가 흰색 머리수건을 두르고 있는 사진이 선명하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단지 상표가 "KOYA"라는 영어로 되어있는 것이 좀 의아스러운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알고있는 북한의 경제력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값싼 라면이지만 이건 깔려있어도 너무 많이 깔려있는 거다. 모든 형태의 식품 가게에는 모두 도시락이 깔려 있고 같은 종류의 용기면을 파는 섹터의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규모가 작은 가게를 가면 용기면이라고는 도시락 밖에 없다.
 
알고보니 KOYA는 한국야쿠르트의 약자였고, 내가 본 도시락 라면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거의 자취를 감춘 한국야쿠르트의 도시락 라면이었다.
 
러시아 출입이 3년차쯤으로 넘어갈 무렵, 월남제, 태국제 등의 유사 용기면이 진열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됐지만, 그저 구색에 불과할 뿐, 손님들의 카트에 들어가는 라면은 오로지 도시락이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다보면 중간에 잠깐씩 멈추는 역이 있는데, 언젠가 화물기차의 서너칸에서 모조리 도시락라면 박스가 실려나오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함께 있던 싸부가 저 기차에 달린 모든 칸이 다 도시락 화물칸이라고 했는데, 믿어도 그만이긴 하지만 그 양반의 굴화가 황굴화만큼은 안돼도 거의 후크횽 수준이라서 반드시 믿을 이유 또한 없다.
 
내가 전해들은 도시락의 러시아시장 석권의 계기는 러시아의 모라토리움이었다. 보따리장수를 통해 러시아시장에 도시락을 진입시킨 한국야쿠르트는 KOYA라는 현지법인을 블라디보스톡에 세웠는데 곧바로 모라토리움을 만났다.
 
러시아 개방의 물결을 타고 현지에 법인을 차린 외국회사들은 거의 러시아를 떠났는데, KOYA는 뭘 몰라서 걍 버텼는지 뭘 알아서 버텼는지 암튼 그때 버티고 있는 바람에 러시아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고 한다.
 
이 글을 쓰느라고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얘기는 안나오고 발로 뛰는 영업을 했다느니 러시아 특유의 장거리운송에도 불구하고 전역에 걸쳐 동일한 가격을 유지했다든지 하는 드라이한 얘기만 나오는데, 모라토리움 극복설을 주장한 우리 싸부의 말이 후크횽 수준의 굴화였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지만 시기적으로 볼 때 전혀 근거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암튼 2005년 판매량이 2억 5,200만개라고 한다.
 
러시아에서 성공한 제품답게 우리나라에서 먹던 도시락과는 제품의 차원이 사뭇 다르다. 우선 종류가 소고기맛, 닭고기맛, 돼지고기맛, 버섯맛 등등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져 있다. 종류마다 포장의 색깔도 다르고 해당되는 맛의 그림이 그려져있다. 소고기는 소 그림, 닭고기는 닭그림. 맛의 종류는 날로 더 다양해져서 갈 때마다 새로운 맛이 추가되기도 했다.
 
입이 짧아서 외국에 갈 때마다 먹는 것 때문에 고생하는 나에게 도시락은 정말로 고마운 존재였다. 러시아의 어느 도시에 도착하면 미리 빌려놓은 아파트로 향하는 길에 크건 작건 수퍼마켓을 들러 종류별로 도시락을 사고 계란을 한 판 산다.
 
아파트에 들어서자 마자 서울에서 가져온 청양고추를 길게 썰어서 덩어리면 밑에 깔고 물을 부은 뒤 시간을 기다렸다가 계란을 깨뜨려 넣으면 완벽한 식사가 된다. 맛의 종류도 확연하게 달라서 오늘은 소고기맛, 내일은 돼지고기맛, 이런 식으로 먹으면 끼니마다 전혀 다른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오늘 찬바람이 쌩하고 부니 시베리아 향수병이 또 도지는 듯 하다.
 
러시아 얘기 한 김에 루시교주눈화처럼 여행기를 올릴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가지고만 있던 시베리아 짤방을 몇 장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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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찍기 위해 저 뒤편의 자작나무 숲에서 저 위치까지 헤엄쳐온 흔적을 볼 수 있다. 걸어서는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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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를 가면 보이느니 그저 이런 풍경이다. 눈밭, 그리고 저 멀리 펼쳐져있는 자작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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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수의 낚시꾼.
얼음 두께가 1미터가 넘는다고 하는데, 거기에 구멍 뚫어놓고 틈틈이 눈으로 보면서 낚시에 걸려있으면 잡아올린다.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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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원저자의 동의하에, 별도로 편집,게재된 글입니다. 불법적인 펌글이나 스크랩이 절대 아님을 밝히는 바이오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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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omdori.info gomdor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러시아 첨 갔을 때 라면을 구하다 포기하고, 뺄맨을 사서 밥통에 삶아 먹었던 적이 있죠...러샤 뺄맨 웁~ 느끼함이 올라옵니다.

    2007/11/19 21:27
    • goandgo  댓글주소  수정/삭제

      만두처럼 생긴 음식이 뺄맨이죠? 저도 며칠 만에 어느 시골식당에서 그거 파는 걸 발견하고 반가움에 눈물까지 흘리다가 반쪽 베어먹고는 "걍 보리빵 먹을께요~~"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7/11/21 09:48
    • Favicon of http://albablog.kr albab  댓글주소  수정/삭제

      goandgo=코코 님이십니다. 히히~

      2007/11/21 10:04
  2. ans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월에 러시아 가서 친구집에 거주 했었는데 친구가 자기 딸내미(8살, 살 많이 쪘음)에게 도시락이 몸에 좋지 않다고 얘기해 달라고 하더군요. 일주일에 하나 정도는 어떻겠냐고 하니 그 딸내미가 이틀에 하나는 먹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많이 먹으면 좋지만은 않을 거라고 말해 줬습니다..참 재미있더군요...제 친구는 빵에 고추장 발라 먹습니다..

    2007/11/21 10:54
  3. 바다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라면을 별로 안좋아 하시나봐요
    저 유명한 도시락을 잘 모르시는듯하니
    나이가 있어보이시는데
    모르시는듯 해서 여쭤봅니다~^^;

    전 이르쿠츠크에 주로 머물렀는데
    그외 블라디와 몽골에서두요

    저 도시락 말구도
    시장 좌판에 가면 다른라면도
    운좋게 만날수있죠

    끼따이 시장가면 한국물품
    비스무리한게 많은데..
    품질상먹기가 참 그렇지만..

    나중엔 개의치 않고 먹게되더라는..

    초코파이도 잘 먹는듯한데
    가격때문에 잘 안먹는것 같더라구요
    추운나라이기에 고칼로리 음식을
    잘먹는 사람들이라..

    치즈좋아하고 초콜렛 좋아하고 ㅎㅎ
    초코파이보다 맛나는게 많았던듯..
    제가 빵종류를 좋아해서^^;

    잡설이 길었네요
    잘 보고갑니다~

    2007/11/21 23:18
    • 코코  댓글주소  수정/삭제

      ㅎㅎㅎ
      도시락을 모르는 건 아니구요. 우리나라에서 도시락 판매가 좀 시들해진 다음에 러시아를 처음 가본 셈이라, 거기서 만난 도시락이 무척 생소했었지요.

      그리고 끼따이라는 말 무척 오랜만에 들어보는군요. 저기 사진에 나온 행색을 보고 이곳 알밥로그 동료들은 고려인 같다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끼따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ㅋㅋㅋ

      2007/11/22 02:59
  4. 로미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지순례 왔습니다~~ 라멘~~

    2007/11/22 00:51
  5. 닭배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보니... 코코횽이 나 보다 나이가 많은 거 같네... 난 코코횽이 40도 안된 사람인 줄 알았었는데... 50은 가뿐하겠군화...

    2007/11/22 05:37
    • 로미오  댓글주소  수정/삭제

      코코님은 저보다 나이, 학번 모두 위이십니다.
      그래봤자 한끗 차이지만요. 나이는 두끗?

      2007/11/22 10:08
  6. 풍까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 전형적인 고려인이네...

    2007/11/22 18:39
  7. 심송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가니 도시락이라는 한국제 라면이 잘 팔리고 있고, 나도 러시아 가서 그거 먹고 살았다'라는 단순한 내용에, 평범한 중년의 두 러시아 아줌마 사진하고 눈 속에 서있는 **수레하고 **분한 고려인 아저씨 사진 정도가 이글의 전부인 것 같은데, 왜 이글이 그렇게도 조회수가 높죠?

    2007/11/24 12:35
  8. 코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게 말입니다. 뭔가 잘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담겨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해봅니다만...

    2007/11/2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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