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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들의 가을여행 - 2

문화/여행 2007/11/27 11:51 by 알밥

 
지리산

<새벽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청학동 계곡, 이 사진은 내가 아직 시체상태에 머물고 있을 시간, 부지런한 돌탱횽 or 긍정횽에 의해 찍혀진 사진입니다.>

 
 
청학동
 
정말 신기한 일이다.
 
나는 술을 무척 즐기지만 무척 약하다. 빨리 취하고, 취한 힘에 밀려 밑빠진 독이 되어 끝도 없이 마신 뒤에 시체가 된다. 시체 상태에서 정상인의 상태로 복귀하는 데는 대략 24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퍼뜩 느껴지는 것은 내 머리가 너무나 말짱하다는 것이었다. 비록 제일 늦게까지 퍼져자고 있는 나를 깨우느라 여러 알바들이 돌아가면서 애를 먹은 흔적은 역력했지만, 술을 그렇게 먹고도 이토록 말짱한 기분으로 눈을 뜨는 것은 근 몇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부스스 일어나 팔다리를 움직여봐도 찌뿌드드한 느낌이라고는 없었다.
 
뭘까?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맞추어 5시간 전부터 요리가 준비된 옻닭의 힘일 수도 있겠고, 서울에서와는 달리 돌아갈 시간에 대한 강박 없이, 옆자리의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도 필요없이, 있는 힘껏 떠들고 웃으며 놀았던 덕도 있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힘은 팬션의 문을 열어젖히자 내 온 몸으로 덮쳐드는 맑고도 시원한 공기 때문일 것이다.
 
펜션

<우리가 묵었던 펜션>

 
 
원래대로라면 나는 세수도 대충대충 하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행이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숨쉬는 것도 귀찮다는 듯 그냥 차에 쳐박혀서 오만상 찌푸리며 웅크리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아침을 먹으러 산아래로 그냥 내려가려는 알바일동들을 향해, 그냥 내려갈 것 같으면 뭐하러 이 높은 청학동까지 기어 올라왔느냐, 예까지 왔으면 청학동 마을을 스쳐보기라도 해야 이곳까지 길을 닦아놓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느냐, 하며 닥달을 해서 허기에 지쳐있는 알바들의 발길을 청학동으로 향하게 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런데 그렇게 해서 올라간 청학동은 적지않게 실망이었다.
 
내가 청학동에 발길을 한 것은 근 20년 만이다. 그때는 아스팔트길도 없었고, 비포장길은 험하기 이를 데 없어서 4륜구동 지프가 아니면 올라오기 힘든 곳이었다. 그렇게 해서 올라온 청학동의 느낌은 한 마디로 "상서로움"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않고 잠시 서있기만 해도 지리산의 정기가 온 몸으로 빨려들어 올 것 같고, 잠시 눈을 돌려보면 계곡 옆 바위 위에서 좌정을 한 채 명상에 빠진 도인들의 빼빼마른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그렇게 몇 걸음 걷다 보면 구한말 사진집에서 방금 뛰쳐나온 듯한 상투차림의 마을 아저씨가 유독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보이던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20년만에 찾은 청학동은 그저 깊은 산골짜기에 지어놓은 작은 민속촌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라도 도시에 사는 게으름뱅이들을 예까지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 어디냐 하는 생각으로 애써 위안을 삼았다.
 
그곳에서 좀더 들어가면 작은 돌맹이를 쌓아올린 돌무지로 작은 마을을 만들어놓은 삼성궁이 있다. 두 번 세 번 다시 찾을 만한 곳은 아니지만 청학동이 초행인 사람에게는 무척 감명어린 볼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허기에 지쳐 나를 향해 원망어린 눈길을 마구 보내고 있는 찌질휘들을 거기까지 데리고 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청학동 입구. 왼편으로 보이는 흰색 차만 없었어도 훨씬 좋은 그림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대략 이런 류의 사진에 있어서 자동차라는 존재는 그저 웬수다, 웬수. 오른편에 돌무지가 보인다. 삼성궁은 무쟈게 높은 돌무지, 길쭉한 돌무지, 평평한 돌무지, 돌로 만든 문, 돌로 만든 솟대 등등 하여 오로지 돌맹이만으로 만들어놓은 조형물의 집합체이다.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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