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용돈을 모아서 레코드 상점에서 베토벤의 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들 그리고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사서 듣기 시작한 것이 나와 클래식 음악의 첫 만남이었다. 교과서에 소개된 음악을 직접 듣고 싶었기에 어린 나이에 조숙한 모습을 보였던 나를 부모님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셨던 기억이다. 감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월광 소나타와 겨울 나그네의 곡들이 예상 밖으로 침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이어짐에 당황했지만 이내 그 음악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제법 클래식 감상에 익숙해져 있었고 클래식 음악과 고전 문학을 통해 진정한 사랑은 무엇이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자신을 희생하는 것만이 진실로 상대를 사랑함이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고귀한 사랑에 감동했고, 베토벤의 아름다운 전원교향곡이 모티브가 된 앙드레 지드의 소설 전원교향악에서 주인공 목사의 비양심적인 행동과 그로 인한 비극적 결말은 반면교사로 참된 사랑과 삶에 대해 일깨워주었다.
비올레타와 같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부러 악녀로 비춰짐으로써 그의 사랑이 식어가게 만드는 일을 어느 누가 기꺼이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안데르센의 작품 속 인어공주의 어린왕자적 순수함과도 다르고 마그리트의 포기와 체념 뒤의 자기학대보다 훨씬 신념의 승화라고 하겠다. 전원교향악은 목사의 양딸이 자살을 시도하고 목사가 되려던 아들은 카톨릭 신부가 되어서 죽기 전에 개종한 그녀의 임종을 지키는 것으로 결말지어지는데, 아마 이는 작가인 지드가 주인공 목사에게 내릴수 있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빅터 위고의 레미제러블의 주인공 장발쟝도 자신의 양녀에게 모든 것을 바쳤고 그래서 딸에게 연인이 생겼을 때 그의 절망은 너무도 컸고 또 불덩이 같은 질투를 느꼈으나, 그 질투감을 한 차원이 높은 사랑을 통해서 진정으로 극복하여 소설 역사상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사람 중 하나도 완전히 다시 태어난다. 그 이후 장발쟝이 보여주는 휴머니즘은 그 책을 읽는 것을 은혜라고 생각하게 할 만큼 큰 감동을 주었다.
소위 386세대의 맏형 뻘인 나의 대학시절은 역사적으로도 암울한 시기였고, 그 시절 가장 친한 친구의 군 입대 후 사망은 그 이후 나의 전공과 인생을 모두 바꾼 큰 사건이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내게 클래식 음악은 가장 큰 위안이자 벗이었고 나는 음악을 더 깊이 있게 듣고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고독을 표현한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작곡할 당시 슈베르트는 나이 서른 살, 젊었을 때의 무절제와 방종으로 몹쓸 병에 걸려서 죽음을 앞 둔 병상에서 마지막 예술혼을 모두 결집한 작품이란 것도 그때 알았고,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죽음의 여정도 혼자 떠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적인 고독과 쓸쓸함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에는 베토벤, 쇼팽, 브람스, 말러, 엘가, 차이코프스키 등 평생을 외로움 속에서 보낸 음악가의 작품들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예술과 문학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치고 외로움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음악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인지 깨닫게 되었다.
결혼 후 수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 곳에서 6년간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전과 다르게 그리고 훨씬 진지하고 깊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어느 학회에서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명문대학교의 정교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천재의 강연이 있었는데, 주변 학자들은 그를 모차르트에 비유했다. “수학자들도 뛰어난 천재를 모차르트에 비유하는구나!” 그러고 보면 수학이나 음악에서의 천재는 노력이나 경험보다 타고난 재능에 더 지배되는 것 같았다. 모차르트는 천재성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손에 끌려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지만, 역사적으로 천재 수학자들에겐 그런 경험조차 필요치 않았다더라. 음악의 해석이라는 것도 악보에서 그 악보에 대한 구조적 표현으로의 전환이고, 그 주요 요소와 관계에 대한 설명이라는 면에서 수학 모델의 해석과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뜻에서 기교적 우위보다는 작곡가의 의도와 그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에 따라서 음악 연주자들이 평가되어짐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영화로 잘 알려진 피터 셰이퍼 원작 아마데우스의 주인공 살리에리처럼 보통의 관점에서 대가의 경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도달할 수 없는 타고난 천재에 대한 패배의식과 좌절 때문인지 세상을 보는 관점이 극단적으로 비관적이고 시니컬한 학자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의 모차르트는 유아적인 사고방식, 돌발적인 행동, 형편없는 매너를 가진 망나니 천재로 묘사 되고 있고, 그에 반해서 살리에리는 높은 지위, 고상한 품격과 더불어 음악적으로도 존경 받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대가임이 분명해서 하늘을 원망할 정도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탐낼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살리에리적 비극은 실제로 일반적인 관점에서 큰 성공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자신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인간의 본성일 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천재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대가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일까? 나 자신이 살리에리 또는 대가의 경지에 근접조차 하지 못해서 거기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가 없겠지만, 대가의 경지가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극소수에 대해서 질투하고, 결국 좌절하는 그런 것은 아니리라. 학문과 창작예술이란 부단히 자기 자신을 상대로 정진하는 수행과도 같은 것이어서 진정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대가라면 타인으로 인해서 좌절이나 질투하는 따위의 행위에서는 일찌감치 초월했으리라. 그때 그 교수의 모습과 행동에 크게 질려버린 나는 어떤 좌절이 내 인생을 가로막더라도 절대 냉소적이지는 말자고 다짐했었다.
천재 모차르트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음악은 어떻게 한결같이 맑고 평화로운 아름다움을 지닐 수가 있을까? 모차르트의 음악은 그의 고뇌와 힘든 삶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것일까? 나는 그 해답을 찾고 싶었다. 그의 음악에 표면적인 아름다움 속에 깊은 오열이 감추어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속적 불행과는 무관하게 그의 영혼은 예술세계에서 더 없이 행복했을까? 20세기 수학을 낙원으로 인도한 수학자 칸토어, 그의 인생은 불행과 비극으로 점철됐지만 그의 수학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지 않았던가? 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철학에서도 그들 자신의 삶의 굴곡은 완벽히 배제되어 있었지 않았던가?
수학과 음악에 대해서 더 많이 알수록 대 작곡가 바흐는 점점 더 큰 태산처럼 느껴졌다. 주제도 없는 춤곡에 클라비코드나 첼로 하나만으로도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고상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신 앞에서는 바흐의 음악이 연주되고, 천사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길 거라는 말에 수긍이 갈 정도였다.
나에게 베토벤은 바흐나 모차르트에 비해서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였다. 꼬박 이틀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저주하며 울부짖으면서 격정적으로 새로운 푸가 작곡에 몰입하는 베토벤의 모습은 마치 악마와 싸우는 듯 했고, 이는 가장 완전한 천재의 전형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베토벤의 열정적이고 위압적이며 심오한 삶과 음악에 나는 끝없이 빠져들었다. 소타타 형식으로 불리는, 서술적이면서 충동적이지만 매우 정돈된 그의 음악은 지금까지도 모든 음악의 이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힘이라 생각했다.
베토벤을 사랑한 것만큼 나는 말러와 그의 음악을 사랑했다. 내가 좌절하고 아플 때마다 말러의 2번 교향곡은 글자 그대로 나를 부활시켰다. 창작 예술이라는 것은 돈이나 권력도 따를 수 없는 최상의 가치라는 신념을 평생 한 번도 저버리지 않고, 그의 음악 안에 모든 세계를 담으려고 했던 말러, 그는 왜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가장 슬픈 노래와 비극적인 교향곡을 작곡해야만 했을까? 약한 베이스드럼에 콘트라바순, 하프, 첼로의 멜로디가 섞여 시작되는 6번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언제나 생각만으로도 나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그가 가장 비탄에 빠졌을 때 만든 난해한 7번 교향곡도 세월이 갈수록 좋아지고 이해되기 시작했다.
말러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가장 파국적인 6번 교향곡, 가장 슬플 때 만들어졌지만 밝은 느낌으로 끝나는 7번 교향곡은 말러의 수제자 브루너 발터조차 철저하게 기피했을 정도로 인간 말러와 그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 어려움에 정점에 있으면서 말러가 모든 것과의 이별을 고하는 위대한 9번 교향곡도 나는 사랑한다. 그의 9번 교향곡은 베토벤의 32번 피아노 소나타, 14번 15번 현악 사중주, 바흐의 마지막 작품인 미완성 푸가 BWV 1080과 함께 내 표현의 범주를 완전히 뛰어넘어 어떠한 말로도 이름 짓거나 분류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지 11년이 지났다. 바쁘게 살아가면서 유학시절만큼 음악에 대해서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눌 사람이 많지 않음에 적지 않게 실망도 했지만 여전히 음악은 남들이 보기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항상 내 곁에 있다. CD 한 장에 위대한 작곡가의 음악을 최상의 연주로 들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 나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법까지 바꿔놓은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었고 앞으로도 물론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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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로미오님께서 2007년 10월 3일에 자신의 블로그에 발표하신 글입니다. 원문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 글자체를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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